개신교 전통별 성령의 은사 이해와 주요 차이: 개혁주의·루터교·감리교·오순절 비교

개신교 전통별 성령의 은사 이해와 주요 차이를 살펴보면, 모든 교단이 성령의 사역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최종 권위와 분별을, 루터교는 말씀과 성례를 통한 성령의 사역을, 감리교는 성화와 공동체적 섬김을, 오순절 전통은 성령세례와 은사의 현재적 역사를 상대적으로 더 강조합니다.

그러나 네 전통이 전혀 다른 신앙을 가졌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성령께서 신자와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며, 은사가 개인의 과시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차이는 주로 방언·예언·치유와 같은 특별한 은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지, 성령세례를 회심과 어떻게 연결하는지, 특별한 체험을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는지에서 나타납니다.

이 글은 성경에 직접 기록된 내용과 후대의 신학적 해석을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또한 각 전통 안에도 여러 견해가 존재하므로, 한 교단이나 신학자의 입장을 개신교 전체의 확정된 결론처럼 단정하지 않습니다.

Table of Contents

성경에서 성령의 은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선물이다

성령의 은사는 개인의 영적 능력을 과시하거나 신앙의 우열을 판단하기 위한 표지가 아니라, 교회의 공동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 등 여러 은사를 언급합니다. 바울은 은사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라고 설명하며,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이 주어지는 목적을 공동의 유익과 연결합니다.

로마서 12장은 예언뿐 아니라 섬김, 가르침, 권면, 나눔, 다스림, 긍휼과 같은 은사를 함께 다룹니다. 에베소서 4장은 교회 안의 직분과 섬김이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도 각 사람이 받은 은사로 서로 봉사하라고 권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나 특별한 현상이 나타났는가?”가 아닙니다. “이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사용되는가?”가 우선적인 판단 기준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구분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 안에서 수행하는 섬김과 기능에 초점이 있고, 성령의 열매는 성령께서 신자의 성품과 삶을 변화시키시는 결과에 초점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모든 신자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반면 고린도전서 12장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이 두 개념을 서로 대립시켜서는 안 됩니다. 은사가 두드러져 보여도 사랑과 절제가 없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목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은사에 관한 논의 한가운데 배치된 이유도 사랑 없는 방언·예언·지식이 그 자체로 신앙의 성숙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방언·예언·치유는 문맥 속에서 읽어야 한다

신약성경에는 방언, 예언, 치유와 같은 특별한 은사가 실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해당 기록이 오늘날 모든 교회와 모든 신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립니다.

사도행전 2장, 10장, 19장은 성령의 역사와 방언이 나타난 사건을 기록합니다. 고린도전서 12~14장은 방언과 예언을 공예배의 질서 안에서 다루며, 방언에 통역이 필요하다는 점과 예언 역시 공동체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성경에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사건이 모든 시대의 규범이라는 결론은 구분해야 합니다. 현대의 특정 체험을 사도행전의 사건과 바로 동일시하거나, 반대로 현재의 모든 특별한 체험을 성경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려면 추가적인 신학적 논증이 필요합니다.

개신교 전통별 성령의 은사 이해와 주요 차이는 왜 생기는가?

은사의 지속 여부에 관한 해석이 다르다

개신교의 성령 은사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방언·예언·치유와 같은 특별한 은사가 사도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는가입니다.

중단론은 일부 계시적·표적적 은사가 사도들과 교회의 기초가 세워지는 시기에 특별히 주어졌으며, 같은 기능으로 계속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항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던 방식이 이제 중단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문구는 역사적 개혁주의 중단론의 중요한 근거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다만 중단론은 성령의 현재적 사역, 기도 응답, 하나님의 섭리, 회심과 성화를 부정하는 견해가 아닙니다.

지속론은 신약성경이 특별한 은사의 종료를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필요에 따라 은사를 주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속론자라고 해서 현대의 모든 예언이나 치유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지속론자는 성경의 최종 권위, 공동체의 검증, 예배의 질서를 함께 강조합니다.

중단론과 지속론을 구분할 때는 “성령께서 지금도 역사하시는가?”라는 질문과 “신약의 모든 특별한 은사가 오늘날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을 분리해야 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주요 개신교 전통이 대체로 긍정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성령세례와 회심의 관계를 다르게 설명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성령세례를 회심할 때 모든 신자에게 일어나는 사건으로 볼 것인지, 회심 이후 사역의 능력을 위해 경험하는 별도의 역사로 볼 것인지에 있습니다.

개혁주의와 루터교를 포함한 많은 개신교 전통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과 로마서 8장 9절을 근거로 성령의 내주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되는 일을 회심과 밀접하게 연결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모든 참된 신자가 성령을 받았으며, 일부 신자만 성령을 소유한 것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전통적 오순절 신학은 성령세례를 회심 이후 증언과 사역의 능력을 위해 받을 수 있는 경험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 하나님의성회 공식 교리문은 성령세례를 신자에게 증언과 봉사를 위한 능력을 주는 경험으로 제시하며, 방언을 그 경험의 최초 외적 증거로 고백합니다. 다만 이 교리는 방언을 구원의 조건으로 본다는 뜻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용어의 차이도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전통은 성령세례와 성령의 내주를 사실상 같은 사건으로 설명하고, 성령 충만은 신자가 반복적으로 구해야 할 삶의 상태로 구분합니다. 다른 전통은 성령세례를 회심 이후의 능력 부여 경험으로 설명합니다. 같은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정의가 다르므로, 논쟁에 앞서 각 전통이 그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예언과 성경의 권위를 연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오늘날 예언을 인정하는지 여부는 성경의 충족성과 최종 권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연결됩니다.

중단론적 전통은 사도적 계시가 완결되었으며, 교회를 위한 새로운 무오한 계시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개인적 인상이나 메시지를 성경과 같은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합니다.

지속론 안에서는 현대의 예언을 성경과 동등한 무오한 계시로 보지 않고, 공동체가 분별해야 할 제한적 권면이나 인도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 자료는 예언을 단순한 미래 예측보다 현재의 상황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말하는 은사로 설명합니다. 이는 모든 감리교인의 단일한 입장을 뜻하지는 않지만, 예언이라는 용어가 전통마다 다르게 정의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어느 견해를 따르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해 다른 사람의 결혼, 진로, 헌금, 치료 선택을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 인상은 성경의 권위 아래 검토되어야 하며, 교회의 책임 있는 분별과 당사자의 자유를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개혁주의는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말씀의 권위와 성령의 조명을 강조한다

개혁주의는 성령께서 성경과 별개로 경쟁하는 분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하고 복음을 통해 믿음을 일으키며 신자를 성화하시는 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전통에서 성령의 중요한 사역은 죄인을 회심시키고,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며, 말씀을 이해하도록 조명하고, 거룩한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혁주의가 특별한 은사에 신중하다고 해서 성령의 능력이나 현재적 사역 자체를 약하게 본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개혁주의 안에도 중단론과 지속론이 공존한다

역사적 장로교와 개혁교회의 많은 흐름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근거로 중단론을 지지합니다. 정통장로교회 자료도 예언과 방언의 중단을 성경의 충족성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현대 개혁주의 안에는 특별한 은사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지속론자와 온건한 은사주의자도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오늘날의 예언이 성경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교리를 만들 수 없으며, 반드시 성경과 공동체의 판단 아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모두 은사를 부정한다”거나 “개혁주의는 모두 중단론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소속 교단의 신앙고백, 헌법, 공식 교리문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루터교는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성령께서 말씀과 성례를 통해 믿음을 일으키신다고 본다

루터교는 성령의 사역을 복음의 말씀과 성례라는 객관적 약속에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제5조는 복음을 가르치고 성례를 집행하는 직무가 세워졌으며, 성령께서 말씀과 성례를 도구로 사용하여 믿음을 일으키신다고 설명합니다. 신앙의 근거를 개인의 감정이나 특별한 체험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약속에 두는 것이 루터교 성령 이해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러한 강조는 기도, 성화, 하나님의 기적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특별한 체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모든 신자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기준으로 만들지 않으며, 신자가 확신을 얻는 토대를 복음의 약속에서 찾는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특별한 은사에 대해서는 교단별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루터교 전체가 방언·예언·치유에 대해 완전히 동일한 현대적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고백적 루터교는 말씀과 성례의 우선성, 성경의 권위, 객관적인 복음의 약속을 특히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일부 지역과 공동체에는 은사적 실천을 수용하는 루터교인도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루터교의 입장을 설명할 때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직접 말하는 내용과 현대 개별 교단의 목회적 지침을 구분해야 합니다. 16세기의 신앙고백이 오늘날의 모든 은사 논쟁에 세부적으로 답한다고 과장해서도 안 됩니다.

감리교는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성령의 은사를 성화와 섬김의 삶에 연결한다

감리교 전통은 성령께서 신자를 변화시키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점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웨슬리 전통에서 성화는 단순한 내면적 감정이 아니라 사랑과 거룩함이 실제 삶에서 자라 가는 과정입니다. 이 틀에서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봉사, 이웃 사랑, 복음의 증언과 연결됩니다.

연합감리교회 공식 자료는 영적 은사를 단순한 재능이나 기술과 동일시하지 않고, 공동체를 세우고 주변의 필요를 섬기도록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설명합니다. 또한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을 포함한 신약의 다양한 은사를 소개합니다. 다만 연합감리교회의 자료가 세계의 모든 감리교 교단과 개별 교회를 완전히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리교 안에는 은사적 흐름과 비은사적 흐름이 함께 있다

감리교를 개혁주의 중단론이나 고전적 오순절주의 가운데 하나로 단순 분류하기는 어렵습니다. 감리교 안에는 방언·예언·치유를 오늘날의 은사로 적극 인정하는 공동체가 있는 반면, 말씀·성례·성화와 사회적 실천을 중심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공동체도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는 은사운동을 다룬 지침에서 예언, 치유, 방언, 방언 통역과 같은 은사가 교회에서 소홀히 다뤄졌다는 은사운동의 문제의식을 소개하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질서와 공동체적 책임 안에서 다루도록 안내합니다.

감리교의 대표적 특징은 특정한 은사 하나를 모든 신자의 표준으로 삼기보다, 은사가 성령의 열매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살피는 데 있습니다.

오순절 전통은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성령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고 본다

오순절 전통은 방언·예언·치유와 같은 신약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성령의 뜻에 따라 나타날 수 있다고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오순절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능력과 복음 증언의 관계를 중요하게 읽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개인적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이웃을 섬기기 위한 능력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오순절 전통을 감정적 체험만 강조하는 흐름으로 묘사해서는 안 됩니다. 고전적 오순절 교단의 공식 문서도 성령세례의 목적을 사역과 증언을 위한 능력, 하나님과의 깊어진 관계, 사랑의 실천과 연결합니다.

방언을 성령세례의 최초 외적 증거로 보는 전통이 있다

미국 하나님의성회와 같은 고전적 오순절 교단은 성령세례가 방언이라는 최초의 외적 표지로 증거된다고 고백합니다. 이때 성령세례와 관련된 방언은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방언의 은사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지만 목적과 사용 방식에서 구분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견해는 “방언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성회 공식 교리문에서도 구원과 성령세례는 별개의 교리 항목으로 다뤄집니다. 또한 모든 오순절·은사주의 교회가 방언을 성령세례의 최초 증거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예배에서 방언을 사용할 때는 고린도전서 14장의 통역과 질서 원칙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개인의 체험이 공동체의 유익보다 앞설 수 없으며, 방언을 하지 않는 신자를 열등하게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치유와 예언은 인정하되 검증이 필요하다

오순절 전통은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치유하시고 예언적 은사를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과 개별적인 치유·예언 주장을 사실로 확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치유 간증을 다룰 때는 당사자의 증언과 의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구분해야 합니다. 기도와 의료적 치료를 대립시키거나, 치료를 중단하도록 권하거나, 치유되지 않은 이유를 환자의 믿음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접근입니다.

예언 역시 공동체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예언하는 이들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분별하도록 요청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을 붙들라고 권합니다. 예언을 이용해 금전적 헌신이나 특정 선택을 강요한다면 성경적 은사의 목적과 질서를 다시 살펴야 합니다.

네 전통의 공통점과 핵심 차이는 무엇인가?

공통점은 성령의 사역과 공동체의 유익이다

개혁주의·루터교·감리교·오순절은 강조점이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 토대를 공유합니다.

성령께서는 신자와 교회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은사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영적 자격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사의 목적은 교회를 세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또한 사랑, 질서, 책임, 분별은 은사 사용에서 제외할 수 없는 기준입니다.

어떤 은사를 가졌는지는 성도의 가치나 영적 계급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한 몸과 여러 지체로 설명한 이유는 서로 다른 은사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관계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세 가지 질문에서 드러난다

첫째, 특별한 은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입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중단론과 지속론이 공존하고, 루터교는 말씀과 성례를 통한 성령의 통상적 사역을 우선합니다. 감리교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입장을 보이며, 오순절 전통은 은사의 지속을 적극적으로 인정합니다.

둘째, 성령세례가 언제 일어나는가입니다. 개혁주의와 루터교를 포함한 많은 전통은 성령을 받는 일을 회심과 연결합니다. 고전적 오순절 전통은 성령세례를 회심 이후 사역의 능력을 위해 경험할 수 있는 역사로 구분합니다.

셋째, 방언과 예언을 어떻게 판단하는가입니다. 중단론은 계시적 은사의 지속을 인정하지 않지만, 지속론과 오순절 전통은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성경과 공동체의 검증을 요구합니다. 감리교와 루터교에서는 교단과 지역 교회에 따라 실제 목회적 적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분별하는 실행 순서

1단계: 성경 본문의 전체 문맥을 확인한다

특정 구절 한두 개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고 고린도전서 12~14장을 함께 읽는 것이 좋습니다. 12장은 은사의 다양성과 공동체의 유익을, 13장은 사랑을, 14장은 예배의 질서와 분별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의 사건을 읽을 때도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와 그 사건이 오늘날 모든 신자에게 요구되는 규범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2단계: 성경의 진술과 신학적 해석을 구분한다

성경은 방언·예언·치유가 초대교회에 있었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계속되는지는 신학적 해석의 영역입니다.

“성경에 나오므로 오늘도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주장과 “오늘날의 사례가 의심스러우므로 성경의 은사도 모두 끝났다”는 주장은 모두 중간 논증을 생략할 수 있습니다. 각 견해가 어떤 본문과 신학적 전제에 근거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3단계: 교단의 공식 문서를 먼저 살핀다

교단의 입장을 확인할 때는 개인 설교나 짧은 영상보다 공식 신앙고백과 교리문서를 먼저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개혁주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루터교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협화신조, 감리교는 해당 교단의 교리 장정과 공식 성령론 자료, 오순절 교회는 기본진리 선언과 성령세례 입장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교단 이름을 사용하는 교회라도 국가, 연합체, 신학교, 지역 교회의 목회 방향에 따라 세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공식 문서와 실제 교회의 실천도 구분해서 살펴야 합니다.

4단계: 열매와 공동체의 유익을 점검한다

은사라고 주장되는 현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는지, 공동체를 세우는지, 사랑과 절제를 동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특정 인물을 절대화하거나 질문을 금지하고, 검증을 불신앙으로 몰며, 헌금·치유·성공을 거래처럼 연결한다면 주의해야 합니다. 예언을 이용해 결혼, 이사, 진로, 치료와 같은 결정을 강요하는 것도 건강한 분별 구조와 거리가 있습니다.

5단계: 검증되지 않은 경험을 사실로 단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간증은 존중할 수 있지만, 간증과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구분해야 합니다.

치유 사례라면 진단 전후의 의학적 정보가 있는지, 자연적인 회복이나 치료 과정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언 사례라면 사전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는지, 사후에 의미를 넓혀 맞춘 것은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검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든 체험을 거짓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정보성 글이나 교리적 주장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경험을 보편적 사실이나 교리의 결정적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건강한 이해는 특별한 현상을 인정하거나 부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의 복음, 공동체의 유익, 사랑과 질서, 책임 있는 검증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개신교 전통을 이해할 때도 어느 한 입장을 과장하거나 조롱하기보다, 각 전통이 어떤 성경 해석과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결론에 도달했는지 차분하게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질문 1

Q. 개혁주의 교회는 모두 방언과 예언이 중단되었다고 믿나요?

A. 개혁주의 안에서는 역사적으로 중단론이 강한 영향을 미쳤지만, 모든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자가 같은 입장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은사 가능성을 인정하는 개혁주의 지속론자도 있으며, 공통적으로 성경의 최종 권위와 체험의 분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문 2

Q. 오순절 교회에서는 방언을 해야 구원받았다고 보나요?

A. 고전적 오순절 교단 가운데 일부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최초 외적 증거로 설명하지만, 이를 구원의 조건과 동일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또한 모든 오순절 교회와 은사주의 교회가 방언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질문 3

Q.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A. 전통마다 용어의 정의가 다릅니다. 많은 개신교 전통은 성령세례를 회심과 연결하고 성령 충만을 신자가 반복적으로 구해야 할 삶의 상태로 설명하지만, 고전적 오순절 전통은 성령세례를 회심 이후 증언과 사역의 능력을 위한 경험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