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마틴은 누구인가: 인도와 페르시아에서의 선교와 성경 번역

헨리 마틴을 찾는 독자는 흔히 그를 ‘젊은 나이에 죽은 선교사’ 혹은 ‘페르시아어 성경 번역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두 표현만으로는 그가 어떤 환경에서 일했고, 번역이 왜 선교의 핵심 과제가 되었는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헨리 마틴의 생애를 인도와 페르시아에서의 실제 활동, 성경 번역의 과정, 그리고 오늘 읽을 때 함께 살펴야 할 역사적 맥락으로 나누어 정리한다. 전기에서 전해지는 경건한 평가와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사건을 구분해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인도로 향한 영국 성공회 성직자

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영국 콘월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는 케임브리지 홀리 트리니티 교회의 복음주의 성직자 찰스 시므온과 관계를 맺었고, 뒤에 영국 성공회 성직자로 안수받았다. 이후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군목으로 임명되어 1806년 인도에 도착했다.

여기서 ‘선교사’라는 호칭은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마틴의 공식 지위는 동인도회사 군목이었으며, 그 제도는 당시 영국의 식민 통치와 분리할 수 없다. 동시에 그는 인도에서 설교와 목회, 언어 학습, 성경 번역에 힘썼다. 따라서 그의 사역을 읽을 때에는 개인의 신앙적 동기만 떼어 보거나, 반대로 식민지 시대라는 배경만으로 그의 모든 작업을 단순화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도에서 맡은 일과 언어를 배운 이유

마틴은 벵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가 현지 언어를 공부한 목적은 단지 외국어 지식을 넓히는 데 있지 않았다.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내용을 현지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옮기려는 일이었다. 학계와 자료기관은 그가 인도 체류 기간에 힌두스탄어(오늘날의 힌디어·우르두어와 관련된 당시의 넓은 명칭), 우르두어, 페르시아어로 신약성경 번역 작업을 했다고 정리한다.

번역은 한 사람이 원문을 다른 문자로 바꾸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문법과 어휘뿐 아니라 독자가 이해하는 문장 관습, 신학 용어, 기존 번역의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한다. 마틴의 사례가 보여 주는 것은 언어를 사역의 보조 수단으로만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려면 먼저 상대가 실제로 사용하는 말과 글을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는 판단이 그 작업의 바탕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페르시아로 간 목적과 협력의 의미

1811년 마틴은 페르시아, 곧 오늘날 이란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가 이미 인도에서 시작한 페르시아어 신약 번역을 검토하고 다듬는 일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는 쉬라즈에서 페르시아 학자 미르자 사이이드 알리 칸과 함께 작업했다. 두 사람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페르시아어 신약 번역을 완성했다는 기록은 번역사가 개인의 업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협력은 현지 언어 전문가가 번역의 주변 인력이 아니라 핵심 동역자임을 생각하게 한다. 번역가의 이름을 기억할 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외국인만 앞세우지 않고 언어와 문화의 정확성을 위해 함께 일한 사람들의 역할도 살펴보는 것이 공정하다. 다만 당시 협력의 세부 과정이나 각 사람이 맡은 분량을 자료 이상으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

페르시아어 신약 번역이 남긴 자리

마틴과 알리 칸의 페르시아어 신약은 1812년에 완성되었고, 마틴이 죽은 뒤 181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인쇄되었다. 이 번역은 이후 페르시아어 성경 번역과 보급의 역사에서 중요한 초기 작업으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이를 ‘페르시아어 성경의 최초 번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페르시아어권에는 마틴 이전에도 성경 일부와 복음서의 번역 전통이 있었으며, 구약 전체를 포함한 페르시아어 성경은 뒤의 번역 작업을 거쳐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그를 소개할 때에는 ‘페르시아어 성경을 처음 만들었다’보다 ‘페르시아어 신약성경의 중요한 번역을 완성한 인물’이라고 쓰는 편이 낫다. 역사적 인물을 높이기 위해 과도한 최초·유일·완전이라는 표현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확한 표현이 그가 남긴 번역 노동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한다.

짧은 생애와 기억할 때의 주의점

마틴은 페르시아어 번역을 마친 뒤 건강이 악화된 상태로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고, 1812년 오스만 제국의 토카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은 31세였다. 그의 편지와 일기는 훗날 전기로 편집되어 널리 읽혔고, 여러 세대의 선교 관심과 헌신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전기는 저자의 신앙적 목적과 시대의 관점을 담을 수 있으므로, 감동적인 문장을 곧바로 검증된 역사 사실로 옮겨 적어서는 안 된다.

특히 마틴의 생애를 ‘젊어서 모든 것을 버리면 반드시 큰 결과를 얻는다’는 공식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성경은 각 사람의 은사와 부르심, 책임의 자리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삶에서 신앙적으로 생각해 볼 점은 성취의 크기보다도, 자신이 맡은 언어와 사람을 가볍게 대하지 않고 오랜 시간 배우며 섬기려 했다는 태도에 있다.

오늘 읽을 때 적용해 볼 세 가지 점검

마틴의 삶을 개인의 결단을 자극하는 이야기로만 소비하지 말고, 성경을 전달하고 배우는 우리의 방식도 점검해 볼 수 있다. 다음 순서는 교회 소그룹이나 개인 묵상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다.

  • 본문부터 확인한다. 번역본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 전에 앞뒤 문단과 책 전체의 흐름을 읽고, 내가 이해한 뜻과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바를 구분한다.
  • 언어와 청중을 고려한다. 익숙한 교회 용어를 처음 듣는 사람에게 설명할 때는 쉬운 말로 바꾸되, 뜻을 단순화하거나 왜곡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 협력자의 이름을 살핀다. 선교와 번역의 역사를 읽을 때 현지 그리스도인, 언어 교사, 학자처럼 기록에서 덜 드러나는 사람들의 기여도 함께 찾아본다.

이 점검은 마틴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권유가 아니다. 각자의 생활 자리에서 정확하게 듣고, 책임 있게 말하며, 다른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대하는 작은 실천이다. 헨리 마틴의 생애는 인도와 페르시아를 향한 한 영국 성공회 성직자의 여정이었고, 동시에 성경 번역이 사람과 언어에 대한 깊은 배움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교회사적 사례로 읽을 수 있다.

더 확인하며 읽을 자료

생애의 기본 연대와 소장 자료는 케임브리지 세계기독교센터의 헨리 마틴 자료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르시아어 번역의 이전 전통과 출판 경위는 《이란 백과사전》의 페르시아어 성경 번역 항목을 함께 읽으면, 한 인물을 존중하면서도 번역 역사를 더 넓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