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브리스길라(Priscilla, 정식 명칭은 브리스가)는 초대교회 역사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남편 아굴라와 함께 사도 바울의 가장 신실한 동역자로 활동했으며, 당시 가부장적인 고대 로마 사회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과 로마서 16장은 브리스길라의 삶과 신앙, 그리고 사역의 실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핵심 본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성경 기록과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브리스길라의 생애, 성경 속 핵심 사건, 그리고 오늘날 신앙인들이 되새겨야 할 실천적 교훈을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1. 브리스길라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글라우디오 황제의 추방령과 고린도 정착
브리스길라는 로마에서 생활하던 중 역사적인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로마 제국의 제4대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는 서기 49년경 로마 시내의 모든 유대인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기록과 사도행전 18장 2절의 언급처럼, 유대인 공동체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이탈리아를 떠나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그리스 고린도로 이주했습니다. 뜻하지 않은 강제 이주라는 커다란 위기 속에서도 부부는 절망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정착지에서 삶과 신앙의 터전을 다시 일구어 나갔습니다.
천막 만드는 직업과 바울과의 운명적 만남
고린도에 정착한 브리스길라 부부는 천막을 만드는 생업(텐트메이커)에 종사했습니다. 당시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러 온 사도 바울 역시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자비량 선교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직업적 공통점은 두 사람과 바울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3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바울은 이들의 집에 머물며 함께 일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생업을 공유하며 형성된 깊은 신뢰 관계는 단순한 사업 파트너를 넘어 평생을 함께하는 영적 동역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2. 사도행전 18장에서 나타난 브리스길라의 주요 역할
에베소 사역으로의 동행과 교회 개척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사역을 마친 뒤 수리아로 떠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과 동행하여 에베소로 이동했습니다(사도행전 18장 18-19절). 이는 단순히 거주지를 옮긴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 삶의 터전을 능동적으로 이전한 결단이었습니다.
바울이 다른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떠난 후에도 브리스길라 부부는 에베소에 남아 교회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들은 상업 활동을 통해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공동체에 복음을 심고 성도들을 돌보는 실질적인 목회적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학자 아볼로를 온전하게 가르친 성경 교사
에베소 사역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학자 아볼로(Apollos)와의 만남입니다. 아볼로는 언변이 뛰어나고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나,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고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불완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6절에 따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회당에서 아볼로의 설교를 들은 뒤 그를 집으로 데려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남성 사역자였던 아볼로를 공개적으로 무안 주지 않고 조용히 영접하여 복음의 본질을 바르게 지도한 일은 브리스길라의 탁월한 영적 통찰력과 겸손한 인품을 보여줍니다.
3.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브리스길라의 헌신과 위상

바울의 목숨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동역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 3-4절에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가장 먼저 언급합니다. 바울은 이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위해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았던 사람들이라고 증언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로마 제국의 정치적 박해와 유대 사회의 배척이라는 이중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는 바울의 사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실제적인 위험을 함께 짊어지며 생명을 건 헌신으로 복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가정교회의 중심이자 공동체의 안식처
로마서 16장 5절에는 “또 저희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건물이 따로 존재하지 않던 초대교회 시절, 성도들은 신실한 성도의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자신들의 사적인 주거 공간을 아낌없이 개방하여 지역 공동체의 예배 처소로 봉헌했습니다.
이들의 집은 고린도, 에베소, 그리고 다시 돌아간 로마에 이르기까지 이동하는 도시마다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환대와 나눔의 영성이 초대교회 확장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름의 순서에 담긴 성경적 의미
성경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총 6회(사도행전 18:2, 18:18, 18:26, 로마서 16:3, 고린도전서 16:19, 디모데후서 4:19) 언급됩니다. 그중 사도행전 18장 18절, 26절, 로마서 16장 3절, 디모데후서 4장 19절 등 4번이나 여성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보다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 헬라·로마 문화권에서 남성의 이름을 먼저 쓰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음을 고려할 때, 아내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 것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입니다. 많은 신약학자들은 브리스길라가 교회의 가르침과 사역의 실행에 있어 남편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주도적이고 헌신적인 역할을 감당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으로 해석합니다.
4. 브리스길라의 삶이 오늘날 신앙인에게 주는 실천적 교훈
삶과 신앙이 일치하는 평신도 전문인 사역
브리스길라는 전임 사역자로서의 직분을 가졌던 인물이 아니라 생업을 가진 직업인이었습니다. 텐트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상적인 경제 활동의 현장을 복음 증거와 제자 양육의 터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도 직업 현장은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을 넘어 소명을 실천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전문 지식과 일터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성별하여 드리는 평신도 전문인 사역의 전형을 브리스길라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부 일치와 상호 존중의 영적 협력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부부 중 가장 아름다운 영적 연합을 이룬 모범으로 꼽힙니다. 거주지의 이동, 교회 개척, 생명을 건 바울 돕기, 아볼로 가르치기 등 모든 사역의 여정에 부부가 온전히 한마음으로 동참했습니다.
가부장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은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