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 교회사에서 정의와 평화, 복음적 양심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Óscar Arnulfo Romero, 1917–1980) 대주교입니다.
그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군부 독재의 탄압 속에서 고통받던 엘살바도르 민중의 편에 서서 복음의 진리를 선포했던 목회자였습니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제로 시작했으나, 시대의 아픔과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불의에 맞서는 예언자적 목소리로 변화해 간 그의 여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오스카 로메로의 생애와 그가 내린 신앙적 결단,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인이 그의 삶에서 배워야 할 신앙적 실천의 기준을 살펴봅니다.
오스카 로메로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보수적 사목자에서 수도 대주교 임명까지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는 1917년 엘살바도르의 작은 마을 시우다드바리오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 안에서 자란 그는 로마 유학을 거쳐 1942년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초기 사목 생활 동안 로메로는 전통적인 신앙과 교회의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성직자였습니다. 그는 교회가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영적인 사명과 전례에 충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1977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을 때, 정부와 기득권층은 온건하고 비정치적인 성향의 그를 크게 환영했습니다. 당시 교회 내부의 진보적 쇄신과 사회 참여 운동을 억제해 줄 적임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암살과 결정적 전환
그러나 대주교 착좌 직후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은 로메로의 사목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랜 친구이자 가난한 농민들을 돕던 예수회 소속 루틸리오 그란데(Rutilio Grande) 신부가 정부 연계 극우 무장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것입니다.
죄 없는 동료 사제와 무고한 농민들이 목숨을 잃는 참상을 직접 목도한 로메로 대주교는 침묵하는 교회가 더 이상 복음적일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현장의 고통을 마주한 그는 책상 앞의 교리와 안주하는 평화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정부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공식 행사를 거부했고, 모든 성당의 주일 미사를 단 하나의 합동 장례 미사로 통합하며 불의에 대한 교회의 연대를 대내외에 선포했습니다.
불의한 시대 속 신앙적 외침과 순교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된 강론
1970년대 후반 엘살바도르는 빈부 격차, 토지 독점, 군부 독재와 무장 반군의 충돌로 내전 직전의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농민과 지식인, 노동자가 강제 실종되거나 고문당했습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매주 주일 미사 강론을 통해 국가 폭력의 실상을 고발하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습니다. 그의 강론은 가톨릭 라디오 방송(YSAX)을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되었습니다.
라디오는 언론 통제 속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들을 수 있는 통로였으며, 국민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좌우 이념 대립을 떠나 오직 인간의 존엄성과 성경이 명령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전파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쓴 비폭력 호소와 최후
로메로 대주교는 지속적인 살해 협박에 시달렸지만 피신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목자로서 양 떼를 버리고 떠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1980년 3월 23일 주일 미사에서 그는 군인들과 경찰들을 향해 결정적인 호소를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상부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법이 우선합니다. 형제들을 향한 탄압을 멈추십시오.”
바로 다음 날인 1980년 3월 24일 저녁, 산살바도르의 암 환자 요양원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로메로 대주교는 침입한 암살자의 총격에 심장을 맞아 제단 앞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나이 62세였습니다.
오스카 로메로의 삶이 제시하는 신앙적 판단 기준
복음의 우선순위: 고통받는 자와의 연대
오스카 로메로의 신앙은 관념적 이론에 머물지 않고 가장 약하고 고통받는 이웃의 현실로 향하는 실천이었습니다. 성경은 시편과 예언서를 통해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일관되게 선포합니다.

로메로는 교회가 가진 기득권과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것이 복음의 본질임을 증명했습니다. 개인의 영적 구원에만 매몰되지 않고 고통의 구조를 직시하는 태도가 참된 신앙임을 보여줍니다.
그의 결단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약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우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념을 넘어선 복음적 정의와 평화
로메로 대주교를 둘러싸고 정치적 해석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그의 본질은 정치 운동가가 아닌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군부 정권의 잔혹한 탄압을 강력히 규탄했을 뿐만 아니라, 무장 게릴라의 폭력적 노선과 납치 행위 역시 명백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나 특정 이데올로기에 교회를 종속시키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오직 복음의 평화주의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었습니다.
세속 정치가 갈등과 진영 논리로 분열될 때, 그리스도인은 이념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의 가치를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이 삶에 적용해야 할 신앙 실천
일상에서 실천하는 신앙의 양심
로메로 대주교처럼 거대한 역사적 현장에서 목숨을 바치는 순교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작은 영역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양심을 지키는 것은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 직장과 가정, 공동체 안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웃이 없는지 살피기
-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묵인하거나 침묵하지 않기
-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동조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서 대변해 주기
신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침묵해야 할 순간과 말해야 할 순간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일상적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비폭력과 진리의 길을 걷는 용기
로메로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오직 말씀과 진실의 힘으로 불의에 저항했습니다. 보복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미움과 대립을 부추기는 언어를 멀리하고, 갈등의 현장에서 화해와 정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진리를 말하되 온유와 사랑을 잃지 않는 태도가 바로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순교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교회사 속에서 다시금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믿고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해방신학자였나요?
A1. 오스카 로메로는 해방신학을 이론적으로 주도한 신학자가 아니라 전통적인 교회법과 교리를 철저히 따르던 정통 사목자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라는 복음적 요구를 현장에서 치열하게 실천하면서 해방신학의 정신적 상징으로 존경받게 되었습니다.
Q2. 로메로 대주교는 공식적으로 순교자로 인정받았나요?
A2. 네, 로메로 대주교는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그를 복자(Beatification)로 시복하였으며, 2018년 10월 14일 바티칸에서 공식 성인(Saint)으로 시성되었습니다.
Q3. 개신교와 다른 교파에서도 오스카 로메로를 기념하나요?
A3. 네, 오스카 로메로는 교파를 넘어 20세기 그리스도교 전체의 대표적 순교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서쪽 정문 상단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등과 함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조각상이 20세기 현대 순교자의 일원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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