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Shalom)’은 오늘날 교회와 일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히브리어 인사말 중 하나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단어를 단순한 마음의 안정이나 분쟁이 없는 평온한 상태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 원문과 신구약 전체 맥락을 깊이 살펴보면 샬롬은 훨씬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성경 속 평화는 소극적인 갈등의 부재를 넘어 관계의 온전한 회복과 번영을 포괄합니다.
샬롬의 어원적 기원부터 구약의 언약적 배경, 신약 헬라어 에이레네(Eirene)로의 확장, 그리고 일상 적용 기준까지 종합적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히브리어 샬롬의 언어적 어원과 다층적 의미
어근 샬람(Shalam)에서 비롯된 온전함과 회복의 정의
히브리어 명사 샬롬은 동사 어근 ‘샬람(Shalam)’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동사는 기본적으로 ‘완전해지다’, ‘흠이 없이 온전하다’, ‘손해를 메우거나 갚아 회복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본문에서 샬롬은 결핍된 부분이 채워져 온전해진 상태(Wholeness)를 뜻합니다. 단순히 전쟁이나 다툼이 잠시 멈춘 정적 상태만을 가리키는 협소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 이웃과의 공동체가 결함 없이 조화를 이루는 안녕을 포괄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샬롬의 구체적 용례와 다차원적 범주
구약성경 안에서 샬롬은 사람의 안부를 묻는 일상 인사부터 국가 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였습니다.
- 신체적 건강과 일상적 안전: 창세기 43장 27절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물을 때 쓰인 단어가 바로 샬롬입니다.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용례입니다.
- 공동체와 국가 간의 화평: 레위기 26장 6절처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거주하는 사회적 평온을 약속할 때도 샬롬이 선포됩니다.
- 언약에 기초한 영적 화해: 민수기 6장 24~26절의 아론의 축복 기도문처럼, 하나님의 얼굴빛이 비추어 주어지는 궁극적인 은총과 구원의 결실로 제시됩니다.
이처럼 샬롬은 개인의 내면, 육체적 건강, 사회적 질서, 하나님과의 언약적 유대라는 다층적 층위를 지닙니다.
구약성경이 계시하는 평화의 언약적 배경
율법과 제사 제도에 담긴 관계 회복의 원리
구약성경에서 평화는 인간의 자의적인 수양으로 얻는 심리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언약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언약적 열매입니다.
구약 제사법에 등장하는 화목제(Peace Offering, 셸라밈)는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속죄를 통해 회복될 때 참된 교제와 나눔이 열린다는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제물을 바친 후 제사장과 예배자, 이웃이 함께 고기를 나누어 먹는 화목제의 식탁은 샬롬이 공동체적 화해로 이어짐을 상징합니다.
선지서가 증언하는 공의(미슈파트)와 정의(체다카)의 연합
예언자들은 억압과 불의가 가득한 현실 속에서 겉으로만 외치는 평화를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은 상처를 가볍게 치료하면서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실상은 평강이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32장 17절을 통해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며, 정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온과 안전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약자를 착취하거나 율법의 정의를 저버린 채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성경적 샬롬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삶의 터전에 실현될 때 비로소 참된 샬롬의 토대가 마련됩니다.
신약성경의 에이레네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평화의 성취
헬라적 평화관을 뛰어넘는 십자가의 화해 사건
신약성경은 구약의 히브리어 샬롬을 헬라어 ‘에이레네(Eirene)’로 계승하여 한층 심화된 복음의 진리로 발전시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내세우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군사력과 강압으로 저항을 억누른 굴종의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신약 기독교가 전한 에이레네는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이뤄진 화평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에이레네)이시며, 십자가를 통해 원수 된 것과 막힌 담을 허무셨다고 증언합니다.
부활의 첫 선물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
요한복음 20장 19~21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처음 건네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에이레네)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요한복음 14장 27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세상이 임의로 주는 평안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의 평안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수시로 흔들리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사망 권세를 이긴 생명에서 비롯됩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적 평화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판단 기준과 분별법
상황적 평온과 영적 샬롬을 구별하는 기준
성경적 평화를 이해하려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안정감과 성경이 말하는 샬롬을 올바른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 환경 의존성 여부: 성경적 샬롬은 고난이나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 안에서 유지됩니다(빌립보서 4장 6~7절).
- 불의와의 타협 여부: 갈등을 피하기 위해 거짓이나 부정을 묵인하는 것은 침묵일 뿐 참된 평화가 아닙니다.
- 관계의 지속적 회복: 자기만 편안한 이기적 고립이 아니라 타인과의 화목을 지향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참된 샬롬은 단순히 문제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문제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내적 견고함으로 나타납니다.
거짓 평화에 빠지지 않기 위한 주의사항과 예외적 상황
성경은 모든 분쟁의 중단이 곧 선한 것은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구조적 악을 내버려 둔 채 종교적 의식만 유지하면 평안이 지속될 것이라며 백성을 안심시켰습니다. 이러한 거짓된 낙관주의는 성경적 샬롬의 가장 큰 왜곡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신 맥락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선포될 때 타협 없는 결단이 요구되며, 때로는 기득권이나 거짓 평화와의 충돌이 불가피함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샬롬에 이르기 위해서는 때로 죄와 거짓의 구조를 허물어뜨리는 영적 싸움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신앙인이 삶에서 샬롬을 실천하는 구체적 순서
1단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수직적 화목 확립
모든 샬롬의 출발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죄책감과 불안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매일의 기도와 말씀 묵상은 내면에 영적 평화를 뿌리내리게 돕습니다.
2단계: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수평적 평화 구축
수직적 화목을 경험한 성도는 자연스럽게 이웃과의 평화를 만드는 자(Peacemaker)로 나아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권면합니다.
- 오해나 다툼이 발생했을 때 침묵으로 회피하기보다 온유한 태도로 대화를 시도합니다.
- 억울함이나 손실이 발생했을 때 무조건적인 보복 대신 공의로운 용서와 용납의 과정을 밟습니다.
-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먼저 다가가 결핍을 채워주는 돌봄을 실천합니다.
수평적 평화는 말로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는 용기와 배려를 통해 가시적으로 완성됩니다.
3단계: 사회와 창조 세계를 향한 정의와 보살핌의 확장
샬롬의 실천은 개인과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일터와 사회 구조, 창조 세계 전체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거래를 지키고, 억울한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정직하게 책임을 다하는 직업 윤리가 곧 일터에서의 샬롬 구현입니다. 또한 무분별한 훼손을 멈추고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적 책임 역시 온전한 샬롬을 이루는 구성 요소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샬롬과 일반적인 마음의 평안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A1. 일반적인 평안은 고난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평탄한 환경에서 느끼는 일시적 감정 상태를 주로 가리킵니다. 반면 성경의 샬롬은 환경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신뢰 속에서 주어지는 온전함과 영적 안녕을 의미합니다.
Q2. 신약의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A2. 신약 기자들은 구약의 샬롬 개념을 헬라어 에이레네로 번역하여 계승하면서, 그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단순한 외적 화해를 넘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류가 복음 안에서 구원을 얻고 한 몸을 이루는 영적 평화로 심화되었습니다.
Q3. 갈등 상황에서 성경적인 방식으로 평화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3. 갈등을 단순히 피하거나 불의를 덮어두는 방식은 성경이 경계하는 거짓 평화에 가깝습니다. 먼저 감정을 가라앉히고 진리와 사랑 안에서 정직하게 문제를 대면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온유함을 바탕으로 용서와 회복을 위한 대화를 단계적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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