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조선은 개항과 함께 급격한 대내외적 격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서구 여러 나라에서 파견된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서양 열강과의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도 전통적인 유교적 질서를 유지하려 했으며, 직접적인 기독교 포교 활동은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초기 선교사들은 직접적인 종교 교리 전파 대신 의료와 교육이라는 실질적인 사회적 봉사를 통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설립한 근대식 병원과 학교는 단순한 선교 기지를 넘어, 봉건적 신분 차별과 질병으로 고통받던 민중에게 실질적인 피난처이자 근대 문명을 접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1. 초기 의료 선교의 시작과 근대 병원 설립 과정
조선 후기 민중들은 콜레라, 천연두 등 풍토병과 감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서양 근대 의학의 도입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던 조선인들에게 절실한 도움이었습니다.
알렌의 입국과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광혜원(제중원)
1884년 미국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이 의사 자격으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당시에는 서양 종교에 대한 경계가 극심했기에, 알렌은 주한 미국 공사관의 공의(의사)라는 신분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 일어난 갑신정변은 한국 근대 의료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개화파의 정변 시도 중 민영익이 칼을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전통 한의학으로는 지혈과 외과적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알렌이 서양 외과 수술법과 소독 처치를 통해 민영익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고종과 조선 왕실은 알렌의 서양 의술에 깊은 신뢰를 보냈습니다.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인 조선 조정은 1885년 4월, 서울 재동에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을 설립했습니다. 광혜원은 설립 직후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아 ‘제중원(濟衆院)’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제중원은 왕실 관료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 천민, 나병 환자까지 차별 없이 진료했습니다. 이후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 선교사가 운영을 맡으며 미국의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의 후원을 받아 현대적 시설을 갖춘 세브란스 병원으로 발전했습니다.
여성 전용 병원 보구여관의 탄생과 소외된 이들을 위한 치유
조선의 엄격한 유교적 내외(內外) 규범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병에 걸려도 제대로 된 진찰 한 번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부녀자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러한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1887년 미국 감리회 여성해외선교회의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과 윌리엄 스크랜턴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의 노력으로 서울 정동에 ‘보구여관(保救女館)’이 세워졌습니다. 고종의 비 명성황후가 “여성을 널리 구호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하사한 곳입니다.
보구여관은 여성 의사가 상주하며 오직 여성과 어린아이만을 전담하여 치료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박에스더(본명 김점동)와 같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의학 의사를 배출하는 교육의 장이자, 차별받던 조선 여성들의 건강권을 지켜낸 보건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 근대 신교육의 태동과 배재·이화학당의 의의
초기 선교사들은 민족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 교육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과거 문벌 양반 중심의 과거제 시험용 교육에서 벗어나, 만인이 평등하게 실용 지식을 배우는 신교육 기관이 연이어 문을 열었습니다.
아펜젤러의 배재학당: 자주적 인재와 근대 학문의 요람
1885년 8월,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는 서울 중구 정동에 두 명의 학생으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886년 고종은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집’이라는 뜻의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현판을 직접 하사했습니다.
아펜젤러는 전통적인 유교 경전 암기 위주 교육을 지양했습니다. 영어, 지리학, 세계사, 산술, 과학 등 근대적 과목을 가르쳤으며, 학생들에게 야구와 축구 같은 서양식 체육 활동을 도입해 신체 단련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배재학당의 교육 이념은 “큰 사람이 되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성경적 봉사 정신에 기초했습니다. 이곳에서 배출된 서재필, 이승만, 주시경 등의 청년들은 훗날 독립협회 활동과 한글 맞춤법 보급, 민족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스크랜턴 여사의 이화학당: 여성의 인간 존엄성과 배움의 권리 회복
1886년 5월,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한 명의 여학생으로 시작해 이듬해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유교 사상 아래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가부장적 질서에 종속되어 있던 조선 여성들에게 근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양인에 대한 불신과 유괴 소문 등으로 부모들이 딸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돌봄과 진심 어린 태도가 알려지면서 점차 많은 여성이 모여들었습니다.

이화학당은 한글 읽기와 쓰기를 기본으로 가르쳤으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지적 주체이자 독립된 인격체임을 자각하게 만들었습니다. 3·1운동의 주역인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와 사회운동가가 바로 이화학당의 교실에서 배출되었습니다.
3. 언더우드와 고등 교육의 확장: 연희전문학교의 설립
초등·중등 단계의 기초 교육이 자리 잡자, 조선 사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최고급 전문 인력 양성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북장로회 호러스 언더우드의 헌신과 연희전문학교
1885년 4월 아펜젤러와 같은 배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는 초기 고아원 형태의 구호 학교를 운영하며 교육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언더우드는 조선 민족이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대학 수준의 고등 교육 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교파 간의 연합과 해외 모금을 이끌어낸 끝에, 그는 1915년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YMCA) 방을 빌려 ‘조선기독교대학(Chosun Christian College)’을 출범시켰습니다.
이후 서대문구 신촌 일대의 부지를 매입해 석조 교사를 신축하고, 1917년 일제의 인가를 받아 ‘연희전문학교’로 개칭했습니다. 연희전문학교는 문과, 상과, 수물과 등을 갖추고 민족의 지도자들을 양성했으며, 훗날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통합되어 오늘날의 연세대학교로 이어지게 됩니다.
4. 초기 기독교 선교 기관이 한국 사회에 남긴 역사적 유산
초기 선교사들의 병원과 학교 설립은 단순한 종교적 차원을 넘어 한국 근대사의 발전 경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봉건적 계급 타파와 보편적 인권 의식의 확산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과 학교에서는 신분과 성별의 차별이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백정 출신 박서양이 세브란스 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자 정식 의사가 된 사례는 조선의 엄격한 골품과 계급 제도가 근대적 전문성을 통해 허물어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글 보급과 민족 문화 보존의 거점
선교사들은 일반 민중이 쉽게 성경과 지식을 접할 수 있도록 순한글 번역과 한글 교과서 편찬에 집중했습니다. 언더우드는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발간하여 한글 연구의 기틀을 닦았으며, 기독교 학교들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민족주의적 보루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초기 선교사들은 왜 종교 교회보다 병원과 학교를 먼저 세웠나요?
A1. 당시 조선은 외국과의 조약을 통해 통상과 거주는 허용했으나 기독교 포교는 국법으로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직접적인 복음 전도 대신 조선 백성에게 가장 시급했던 질병 치료와 근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합법적인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Q2. 제중원은 정부 병원이었나요, 아니면 선교사 개인의 병원이었나요?
A2. 제중원은 설립 초기 조선 조정이 건물과 재정을 지원하고 선교사인 알렌이 진료와 운영을 전담한 민관 합작 형태의 국립병원이었습니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 즈음 조선 정부의 재정난으로 인해 운영권이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 완전히 이관되었습니다.
Q3. 초기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와 병원은 오늘날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A3. 제중원과 연희전문학교는 합쳐져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학교가 되었으며, 배재학당은 배재고등학교와 배재대학교로 이어졌습니다. 이화학당은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로, 보구여관은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이대목동·서울병원)으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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