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칼과 군대 앞에서 어떤 선택을 내렸는가는 교회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가르침과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공권력에 순종하라는 사도 바울의 교훈 사이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생명이 걸린 현실적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개혁 복음주의적 관점과 사료에 근거하여 초기 기독교인의 군 복무와 비폭력 논쟁이 발생한 역사적 맥락, 당시 교부들의 판단 기준, 그리고 신앙의 선배들이 지키고자 했던 핵심 본질을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1. 신약성경과 로마 제국 속 군 복무의 배경
초기 교회의 군 복무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의 문맥과 당시 로마 제국의 군사 제도를 명확히 구분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군인에 대한 기록
성경은 군인이라는 직업 자체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하거나 즉각적인 폐업을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로마 군인들과의 만남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 세례 요한의 권면(눅 3:14): 군인들이 나아와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세례 요한은 군대를 즉시 떠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권면하며 군인 신분 내에서의 공의로운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 가버나움의 백부장(마 8:5-13): 예수님은 하인의 치유를 구한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으며, 그의 직책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 고넬료의 회심(행 10장):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은 최초의 이방인 회심자 중 한 명이었으나, 성경은 그가 군직을 즉시 사임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그의 경건과 구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로마 군사 체계와 우상숭배의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 2세기부터 4세기 초반까지 교회 내에서 군 복무에 대한 비판적 논쟁이 거세졌던 이유는 단순한 살상 행위의 문제를 넘어 로마 군대 내부의 종교적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 황제 숭배 의식: 로마 군단은 군단기(Aquila)와 황제의 상을 신성시하며 군사 훈련 및 행사 때마다 번제와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 군사 서약(Sacramentum): 군에 입대할 때 행하는 충성 맹세는 제국의 신들과 신격화된 황제에게 바쳐지는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 치안과 사형 집행: 군인들은 전쟁 외에도 지방의 치안 유지, 세금 징수, 그리고 기독교인을 포함한 범죄자의 체포 및 사형 집행을 직접 담당했습니다.
2. 초기 기독교의 비폭력 논쟁과 판단 기준
초대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성경의 계명과 제국의 현실 속에서 몇 가지 명확한 판단 기준을 바탕으로 행동했습니다.
교부들의 신학적 견해와 판단 기준
역사적 문헌에 따르면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군 복무에 대해 다소 엄격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저서 『군인의 면류관(De Corona)』과 『우상숭배론(De Idololatria)』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군에 입대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칼을 든 자를 무장 해제시키셨으며, 한 사람이 하나님과 카이사르라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군대의 우상숭배적 제의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약 160–220년경):
이교도 철학자 켈수스(Celsus)가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을 지키기 위한 군 복무를 회피하여 제국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비판했을 때, 오리게네스는 『켈수스 반박(Contra Celsum)』을 통해 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적인 칼을 들지 않지만, 황제와 제국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제사장적인 영적 군사로서 공헌하고 있다고 변증했습니다.
- 오리게네스(Origenes, 약 185–254년경):
3세기 초의 교회 규례집으로 알려진 이 문헌에는 군인이 세례를 받고자 할 때 살인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약과 우상숭배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며, 칼의 권세를 쥔 관리가 군사적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경계하도록 지도했습니다.
- 히폴리투스의 사도 전통(Traditio Apostolica):
초기 성도들의 4단계 실천 및 결단 순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군 복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거쳤던 분별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우상숭배와의 타협 여부 확인: 명령받은 직무 속에 황제 숭배나 이방 제의 참여가 포함되어 있는지 최우선으로 분별함.
- 살상과 폭력 집행의 불가피성 점검: 제국 군인으로서 무죄한 자를 해치거나 사형 집행관으로서 피를 흘리는 일에 동원되는지 확인함.
- 직무 내 비폭력 사역 전환 모색: 이미 군에 입대한 상태에서 회심한 경우, 전방 전투 부대 대신 치안, 행정, 군마 보급 등 피를 흘리지 않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모색함.
- 신앙의 순결을 위한 불복종과 순교 수용: 타협할 수 없는 우상숭배나 불의한 살상 명령이 내려졌을 때, 로마법의 처벌과 순교를 기꺼이 감수함.
3. 콘스탄티누스 전환과 정당한 전쟁론으로의 발전
서기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이후 제국의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기독교인의 군 복무에 대한 이해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역사적 전환과 주의해야 할 예외
기독교가 제국의 보호를 받는 위치에 서게 되자, 이전까지 ‘국가와 분리된 소수자’로서 견지했던 절대적 비폭력주의는 국가 보위라는 현실적 책임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 말기 야만족의 침입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위기 속에서,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서 공권력에 의한 무력 사용이 불가피함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롬 13장을 근거로 국가 권세가 악을 억제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칼을 부여받았음을 인정하면서 정당한 전쟁(Just War) 이론의 신학적 기초를 놓았습니다.
-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년경)의 기여:
- 정당한 전쟁의 세 가지 기본 요건:정당한 권위(Legitima Auctoritas): 개인의 복수가 아닌, 합법적인 통치자에 의해 선포되어야 함.정당한 명분(Causa Justa): 침략이나 사욕이 아닌, 침해당한 정의를 회복하고 이웃을 보호하기 위함이어야 함.올바른 의도(Recta Intentio): 전쟁의 목적이 파괴나 보복이 아닌 평화의 회복이어야 함.
개혁 복음주의적 관점에서의 종합
종교개혁자들과 현대 개혁 복음주의 신학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개혁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John Calvin)의 노선을 따라, 타락한 세상에서 질서와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반 은총으로 국가와 사법 제도를 허락하셨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시민으로서 공공의 안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군 복무에 임할 수 있으나,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명령(민간인 학살, 침략 전쟁 등)을 내릴 때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는 원칙에 따라 저항해야 합니다.
4. 현대 그리스도인을 위한 신앙적 점검 체크리스트
오늘날 우리는 고대 로마와 같은 형태의 군사적 우상숭배에 직면하지는 않지만, 무력과 분쟁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여전히 신앙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체크리스트 1] 공권력과 직무 수행에 대한 성경적 점검
- [ ] 내가 속한 직무와 역할이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공의를 세우는 일에 부합하는가?
- [ ] 권위자의 명령이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불의한 폭력이나 불법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 [ ]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도, 궁극적인 복종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임을 기억하고 있는가?
- [ ] 갈등과 분쟁의 상황에서 분노와 사적인 복수심이 아닌 공적 정의와 회복을 목표로 삼고 있는가?
[체크리스트 2] 일상 속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태도 점검
- [ ] 로마 군인처럼 강압적인 권력을 휘두르거나 약자를 억압하는 태도를 버렸는가?
- [ ] 주어진 보수와 자리에 감사하며 탐욕으로 인한 거짓이나 부정을 멀리하고 있는가?
- [ ] 정치적·사회적 대립 속에서 맹목적인 적개심을 버리고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기도하는가?
- [ ] 불의와 타협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신앙적 용기와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초대교회 성도들은 전원 군 복무를 거부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부들의 기록을 보면 기독교인이 군대 내에 상당수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이전 시기인 2세기 후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절의 군단 중 ‘번개 군단(Legio XII Fulminata)’에는 기독교인 병사들이 복무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회심 전 이미 군인이었던 이들이 회심 후에도 군에 머물렀던 사례가 많았으며, 교회의 권면은 신분 그 자체보다 우상숭배와 살상에 가담하지 않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Q2. 구약성경의 수많은 전쟁과 신약의 비폭력 가르침은 모순되지 않나요? 구약의 전쟁은 구속사적 맥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과 언약 백성을 보존하기 위한 특수한 ‘성전(Holy War)’의 성격을 띱니다. 반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특정 민족이나 영토에 묶인 국가가 아니라 온 열방에 흩어진 영적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물리적 칼이 아닌 복음의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영적 싸움을 싸우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구속사의 진전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 공의를 세우고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자체는 동일합니다.
Q3.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군 복무를 하거나 무기를 드는 것은 성경적으로 타당한가요? 개혁 복음주의 전통에서는 국가 안보와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성격의 군 복무를 정당한 직무로 인정합니다(롬 13:4). 군 복무는 이웃을 폭력과 침략으로부터 지키는 ‘이웃 사랑’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전쟁 자체를 미화하거나 맹목적인 국가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언제나 평화를 최우선의 목표로 추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