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문맥과 기독교 선교의 의미

성경에서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이라 불리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은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과 선교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 가장 널리 인용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구절은 문맥 전체를 살피기보다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활동적 명령 하나로만 축약되어 이해되곤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절이 위치한 복음서 전체의 서사, 1세기 유대 및 헬라-로마 세계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헬라어 본문이 보여주는 문법적 구조를 균형 있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 글에서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성경적 문맥과 기독교 역사에서 실천된 선교의 참된 의미를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1. 마태복음 28장의 본문 구조와 문맥적 배경

마태복음은 유대계 그리스도인을 주된 일차 독자로 염두에 두고 기록된 복음서로 평가받습니다.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예수님을 모세보다 큰 새로운 율법의 해석자이자 다윗의 자손인 진정한 왕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28장의 결론부는 마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들이 하나로 모이는 정점입니다.

산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권세의 회복

마태복음 28장 16절에 따르면 열한 제자는 예수께서 지시하신 갈릴리의 한 산으로 향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산’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공간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가르치신 ‘산상수훈(5~7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신 ‘변형산(17장)’, 그리고 종말의 징조를 가르치신 ‘감람산(24장)’에 이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지막 명령을 내리시는 곳 역시 산입니다.

본문 18절에서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다니엘 7장 13~14절에 등장하는 ‘인자(Son of Man)’에게 영원한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지는 구약 묵시 문학적 환상의 성취를 직접적으로 지시합니다. 로마 황제의 권력이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당대 상황에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통치권’을 쥐고 계시다는 선언은 제자들에게 근본적인 세계관의 전환을 요구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문법적 구조: 단 하나의 주동사와 세 개의 분사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헬라어 원문(NA28 기준)을 분석하면 명령의 중심축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 주동사(Main Verb): ‘마쎄튜사테(μαθητεύσατε)’ — “너희는 제자를 삼으라” (부정과거 능동태 명령법)
  • 수식 분사 1: ‘포류텐테스(πορευθέντες)’ — “가면서/가는 중에” (부정과거 수동태 디포넌트 분사)
  • 수식 분사 2: ‘밥티존테스(βαπτίζοντες)’ — “세례를 베풀며” (현재 능동태 분사)
  • 수식 분사 3: ‘디다스콘테스(διδάσκοντες)’ — “가르쳐 지키게 하며” (현재 능동태 분사)

성경 텍스트의 문법적 구조상 유일한 핵심 명령은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가는 것’, ‘세례를 주는 것’, ‘가르치는 것’은 제자를 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자 과정으로 기능합니다. 따라서 무작정 지리적인 이동만을 강조하거나 숫자 중심의 개종자 확보에 집중하는 것은 원문의 강조점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닙니다.

2. 기독교 선교의 3단계 실행 순서와 올바른 판단 기준

마태복음 28장에 근거한 기독교 선교는 단순한 종교적 세력 확장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양육하는 포괄적 사역입니다. 본문은 이를 세 가지 순서로 제시합니다.

기독교 선교의 3단계 실행 순서

  • 삶의 현장으로 나아감 (Going): 일차적으로는 제자들의 안전지대인 유대 땅을 넘어 ‘모든 민족(판타 타 에스네, πάντα τὰ ἔθνη)’을 향해 물리적·문화적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현대 신학에서는 지리적 이동뿐만 아니라 각 성도가 처한 일터와 사회적 영역으로 복음적 삶을 살아내며 나아가는 ‘보냄 받은 자의 태도’를 포함합니다.
  • 세례를 통한 언약적 소속 (Baptizing):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옛 자아와 세속적 가치관에 대해 죽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 안에 새롭게 속하게 되었음을 공동체 앞에서 공적으로 확인하고 인치는 예식입니다.
  • 가르쳐 지키게 하는 전인격적 성숙 (Teaching to Obey): 단순히 교리나 지식을 머리로 습득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법과 삶의 방식을 실제로 ‘지켜 행하도록’ 돕는 지속적인 제자도 형성의 과정입니다.

올바른 선교 판단 기준 체크리스트

역사 속 선교와 오늘날의 교회 사역이 마태복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기준을 객관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 지배 권력이 아닌 자기 비움의 방식인가: 군사적·정치적·경제적 힘을 배경으로 한 강요가 아니라, 십자가의 섬김과 사랑을 바탕으로 다가가는가?
  • 피상적 개종이 아닌 전인격적 변화인가: 단순한 결신자 수치나 보고서용 통계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윤리적·영적 변화를 추구하는가?
  • 현지 문화와 언어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있는가: 타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맥락을 무시하고 자문화 우월주의를 기독교 신앙과 동일시하지 않는가?
  • 지속 가능한 현지인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는가: 외부자에 대한 종속 구조를 만들지 않고 현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서도록 돕는가?

3. 역사적 사례로 보는 선교의 실천: 성경과 근대 선교사

마태복음 28장의 위임령은 역사의 현장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가? 성경 기록과 공인된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실천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 사례: 안디옥 교회와 바울의 여정

사도행전 13장에 등장하는 시리아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 중심의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를 넘어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대표적 모델입니다. 바나바와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소아시아와 유럽 일대를 순회했습니다. 바울은 도시마다 회당과 시장(아고라)에 들어가 복음을 증언했을 뿐만 아니라(행 17:17),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지에서 현지인 개종자들을 양육하고 장로들을 세워 자립적인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 ‘지키게 하는 제자’를 기르고자 한 마태복음의 원리와 일치합니다.

역사적 인물: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의 인도 선교

근대 선교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영국의 윌리엄 캐리는 1792년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한 수단 사용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에 대한 고찰』을 발표하며 마태복음 28장의 대위임령이 초대 사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지속적 명령임을 논증했습니다.

1793년 인도에 도착한 캐리는 서구 제국주의적 팽창에 편승하지 않고 현지 문화 속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벵골어, 산스크리트어, 마라티어 등 수십 개의 인도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했으며, 세람포르 대학을 설립하여 현지인 고등교육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힌두교의 과부 화형 풍습이었던 ‘사티(Sati)’의 비인도성을 고발하고 영국 식민 정부에 지속적으로 폐지를 청원하여 1829년 법적 금지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복음 전파와 사회적 섬김, 인권 옹호가 결합된 그의 사역은 성경적 선교가 단순한 입술의 주장이 아닌 전인적 삶의 증언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인물: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의 한국 선교

188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은 언더우드는 한국 초기 기독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는 한국어를 익혀 한글 성경 번역 사업의 기틀을 닦았으며, 1890년에는 최초의 한영사전인 『한영자뎐』과 『영한자뎐』을 편찬하여 언어적·문화적 소통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언더우드는 선교지의 자립을 강조하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Nevius Method)’을 적극 도입하여 한국 교회가 자립(Self-support), 자치(Self-governance), 자전(Self-propagation)을 이루도록 도왔습니다. 더불어 경신학교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여 근대 교육을 제공하고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 속에서 한국인들에게 의료와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을 증명한 그의 발자취는 마태복음 28장의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위임이 교육과 섬김의 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된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4. 왜곡과 극단: 주의해야 할 예외와 오류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는 영광스러운 헌신뿐만 아니라 성경의 본질을 왜곡하여 발생한 어두운 과오와 극단적 일탈도 함께 존재합니다. 현대 신앙인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대표적인 오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야 할 선교의 왜곡 체크리스트

  •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와의 결탁: 복음을 전한다는 명목 아래 서구 문화를 절대화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피지배 민족의 고유한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
  • 공격적·강제적 개종 행위: 타 종교인의 종교적 자유와 인격을 무시한 채 경제적 유인이나 물리적 압박, 모욕적인 방식으로 개종을 강요하는 행위
  • 승리주의(Triumphalism)적 접근: 복음을 세상 권력이나 숫자의 힘으로 확장하려는 세속적 성공주의와 양적 팽창 위주의 보고 문화
  • 양육 없는 단기 이벤트화: 제자를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장기적 양육 과정 없이 단순 방문과 사진 촬영 중심의 단기 행사로 선교를 소모하는 행위

이러한 왜곡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종의 형체’를 버리고 세상의 지배 방식을 취했을 때 발생했습니다. 참된 선교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고난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5.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의 의미

마태복음 28장 20절 후반부의 임마누엘 약속은 대위임령 전체를 떠받치는 신학적 토대입니다. 마태복음은 1장 23절에서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며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28장의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으로 수미일관(Inclusio)하게 끝을 맺습니다.

제자들에게 맡겨진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과업은 인간의 지혜나 전략, 교회의 물적 자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의 무게는 부활하신 주님의 상존(常存) 약속 안에서 평안과 용기로 전환됩니다. 선교는 교회가 독자적으로 이끌어가는 인간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사역(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에 신자 공동체가 믿음으로 참여하는 순종의 여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마태복음 28장의 ‘모든 민족’은 어떤 대상을 의미하나요?

헬라어 ‘판타 타 에스네(πάντα τὰ ἔθνη)’는 지리적·정치적 의미의 국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언어와 문화, 혈통적 유대감을 공유하는 종족 집단 전체를 포괄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창 12:3)이라는 보편적 구원 계획이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 열려 있음을 확증하는 표현입니다.

Q2. 직접 해외로 나가는 선교사만 이 명령을 실천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법적으로 ‘포류텐테스(가면서)’는 직업 선교사의 타문화권 이주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일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의 궤적을 포함합니다.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직업, 가정,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증언하고 제자도를 살아내는 모든 성도를 ‘보냄 받은 자’로 이해합니다. 보내는 자로서의 기도와 후원, 삶의 자리에서의 증언 모두 대위임령의 실천입니다.

Q3. 세례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라는 구절은 삼위일체 교리와 어떤 연관이 있나요?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이름’으로 번역된 헬라어 ‘오노마(ὄνομα)’는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위격(성부, 성자, 성령)을 언급하면서도 이름은 단수형을 취하고 있는 이 독특한 구조는 초대교회가 경험하고 고백한 삼위일체 신앙의 본질(한 하나님이시며 세 위격으로 존재하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경적 기초 구절 중 하나로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