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구한말 한반도는 정치적 격변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배움과 개혁을 절실히 필요로 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조선 땅을 밟은 복음주의 선교사들과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단순한 교리 전파에 머물지 않고 교육을 통한 사회 변혁에 주목했습니다.
그 결과 세워진 기독교 대학들은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초석을 놓았으며, 여성과 소외 계층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에게 인간 존엄성과 새로운 학문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일은 한국 교회사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 교육의 형성과 신앙적 실천의 본질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문을 연 초기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
한국의 초기 기독교 대학들은 서구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역과 민족 지도자들의 독립 및 계몽 의지가 결합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억압된 민중에게 지식을 보급하고 성경적 가치관에 기초한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학교를 세웠습니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연희전문학교의 태동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1885년 내한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원두우)는 한국 고등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언더우드는 복음 전파와 더불어 수준 높은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 수준의 교육기관이 조선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1915년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건물에서 ‘경신학교 대학부’를 개설하였으며, 이는 이후 서대문 촌락 부지를 마련하여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로 발전하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언더우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기독교적 인격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의 목표를 두었습니다.
언더우드가 추구한 교육 선교는 단순히 성경 지식만을 전달하는 좁은 의미의 신학교육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인문학, 자연과학, 상학 등 근대 학문 전반을 포괄하는 고등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민족 사회를 책임질 기독교 지성인을 길러내는 종합적인 접근이었습니다.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와 배재학당 및 숭실의 윌리엄 베어드
미국 감리교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는 1885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인 ‘배재학당’을 설립하여 신학문과 자유주의적 민주 시민 의식을 고취했습니다. 배재학당의 교육 이념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마태복음 20장 26~27절)”는 성경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이는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중요한 철학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평양에서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 배위량)가 1897년 숭실학당을 설립하고, 1906년 한국 최초의 근대 대학 과정으로 공인받은 ‘숭실대학’을 출범시켰습니다. 베어드는 기독교 복음에 충실한 자립적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학문과 영성 훈련을 결합했습니다.
숭실대학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1938년 자진 폐교를 결의함으로써 신앙의 순결성과 민족적 지조를 지킨 역사적 결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기독교 대학이 지켜야 할 건학 이념의 가치가 세속적 타협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중대한 교회사적 사례입니다.
메리 스크랜턴과 이화학당: 여성 고등교육의 개척
조선 사회에서 배움의 기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던 여성들에게 문을 연 설립자는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 파송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이었습니다. 그녀는 1886년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이화학당’을 시작했습니다.
스크랜턴은 단순히 서구식 교양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 “여성 스스로 하나님 안에서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고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서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화학당의 대학과는 1910년 설립되어 한국 최초의 여성 고등교육기관(현 이화여자대학교)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화의 설립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받던 여성의 인권을 회복하고, 근대 사회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들을 체계적으로 배출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의 건학 이념과 핵심 조건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의 생애와 사역을 분석하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세 가지 핵심 건학 원리가 드러납니다. 이는 오늘날의 고등교육 기관들이 참고해야 할 신앙적·윤리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기독교적 세계관과 학문의 융합
초기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은 성경의 진리와 학문적 수월성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학문의 영역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섭리 아래에 있다는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했습니다.
- 신앙과 이성의 조화: 맹목적인 신앙주의나 세속적인 합리주의를 모두 경계하며, 신앙 안에서 학문을 깊이 있게 탐구하도록 지도했습니다.
- 진리 추구의 자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는 말씀에 입각하여 왜곡되지 않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풍토를 조성했습니다.
- 전인 교육(Holistic Education): 지식의 축적에 그치지 않고 지성(Intellect), 영성(Spirituality), 인격(Character)이 조화를 이루는 전인적 성숙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섬김의 리더십과 사회적 책임 실천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이 공유한 가장 두드러진 판단 기준은 교육의 목적이 개인의 출세나 기득권 획득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배움을 얻은 자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나아가 사회를 섬겨야 한다는 복음적 명령을 강조했습니다.
설립자들은 학생들에게 민족의 고통에 공감하고 시대적 어둠을 밝히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계몽운동가, 농촌 지도자들이 기독교 대학을 통해 배출된 역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자립성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원칙
설립자들은 정치 권력이나 재정적 압박 속에서도 건학 이념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엄격한 원칙을 견지했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나 전시 체제 동원 속에서도 기독교적 가치를 타협하지 않으려는 결단을 보였습니다.
대학의 자립적 운영과 복음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후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투명한 재정 관리를 시행했으며, 교직원 채용과 교육과정 편성에서 성경적 기준을 명확히 설정했습니다.
교회사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 대학의 역사적 공헌과 성찰
기독교 대학의 역사는 한국 사회에 막대한 긍정적 유산을 남겼으나, 동시에 시대 변화에 따른 구조적 과제와 성찰의 지점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신학적 해석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 근대화와 복음화에 미친 긍정적 영향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이 남긴 역사적 기여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리됩니다.
- 근대 과학 및 서양 의학의 도입: 제중원(세브란스의 전신) 등과 연계된 의학교육과 근대 자연과학 교육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보건위생과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했습니다.
- 민주 시민 의식 함양: 만민평등사상과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학내 생활과 토론 문화를 통해 전파함으로써 근대적 시민의식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 민족 독립운동의 요람: 일제강점기 3·1운동과 학생 항일 운동에서 기독교 대학 출신 인물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현대 기독교 대학이 직면한 도전과 주의할 예외
오늘날 기독교 대학은 설립 당시의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여러 현실적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속화와 대학 구조조정, 학령인구 감소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 깊게 분별해야 합니다.
- 건학 이념의 형식화 경계: 기독교 대학이라는 명칭만 유지한 채 실제 교육 현장에서 성경적 가치관이 배제되거나 채플 및 기독교 과목이 단순한 학점 이수 요건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 신학적 다양성과 정체성 사이의 균형: 교단 간 차이나 신학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의 기본 진리라는 확고한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 세속적 성공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지양: 대학의 외형적 성장이나 취업률 중심의 평가에 매몰되어 설립자들이 지향했던 섬김과 희생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신앙적 적용과 실천 과제
초기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의 삶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움과 소명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 그들의 헌신은 과거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일상과 공동체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할 기준이 됩니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기독교적 지성의 훈련
기독교 대학 설립자들이 추구했던 교육적 가치는 대학 교육을 받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의 일상적 삶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지식의 목적 재점검: 내가 가진 전문 지식과 기술이 개인의 성취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웃과 사회를 섬기기 위한 도구인지 동기를 점검합니다.
- 비판적 성경 읽기와 사회 이해: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성경적 진리의 렌즈를 통해 시대 현상을 해석하고 분별하는 훈련을 지속합니다.
- 전문 영역에서의 소명 발견: 직업과 학업의 현장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역지로 인식하고, 그 자리에서 정직과 탁월함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독교 교육의 지원과 기도
기독교 대학과 기독교 학교들이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도 설립자들의 신앙 유산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도록 교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육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다음 세대 지도자 양성에 동참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한국 초기 기독교 대학들은 주로 어떤 교단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나요?
A1. 주로 19세기 말 내한한 미국 북장로회와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장로교 측에서는 언더우드(연희전문)와 베어드(숭실대) 등이 활동했고, 감리교 측에서는 아펜젤러(배재학당)와 스크랜턴(이화학당) 등이 중심이 되어 고등교육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Q2. 숭실대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자진 폐교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1930년대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 요구가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는 우상숭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숭실의 지도자들은 세속 권력과 타협하여 학교를 유지하기보다 신앙의 순결과 기독교 대학의 건학 이념을 지키기 위해 1938년 자진 폐교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Q3. 기독교 대학의 건학 이념은 일반 사립대학과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나요?
A3. 기독교 대학은 단순한 전문 지식의 전수나 취업 역량 강화를 넘어 성경적 세계관에 기초한 전인적 인격 형성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학문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배운 지식을 이웃과 사회를 섬기는 ‘종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으로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점이 핵심적인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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