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는 한국 사회에서 낯익은 듯하면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독교 교단입니다. 고풍스러운 한옥 성당이나 서울 시청 인근의 장엄한 로마네스크 양식 주교좌성당을 보고 가톨릭과 유사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종교개혁 전통을 계승한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교단이라는 설명을 듣고 장로교나 감리교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성공회는 서방교회의 유서 깊은 전례 전통과 종교개혁의 성서적 통찰을 균형 있게 통합한 ‘비아 메디아(Via Media, 중용의 길)’를 표방합니다. 역사적 기원부터 한국 선교의 구체적인 인물, 신학적 판단 기준, 예배 참석 순서와 예외 상황까지 체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대한성공회의 역사적 뿌리와 세계성공회공동체
성공회(聖公會)라는 명칭은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Una Sancta Catholica et Apostolica Ecclesia)’라는 신앙고백에서 유래했습니다. 특정 국가나 특정 인물의 이름 대신 보편교회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입니다.
1) 16세기 잉글랜드 종교개혁과 중용의 신학
성공회의 역사적 출발점은 16세기 잉글랜드(영국) 종교개혁입니다. 당시 잉글랜드 교회는 대륙의 종교개혁처럼 기존 가톨릭교회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는 방식 대신,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주교 제도와 전례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잘못된 관행을 개혁하고 성서의 최고 권위를 확립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 보편적 가톨릭 전통(Catholic): 초대교회 신조(사도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주교직에 바탕을 둔 역사적 주교직 계승, 성찬례 중심의 전례 예배를 보존합니다.
- 개혁된 개신교 전통(Reformed): ‘오직 성서’의 권위를 존중하며, 라틴어가 아닌 신자들의 모국어로 예배를 드리고, 만인제사장 원리에 따라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두 전통의 조화는 극단적인 대립을 피하고 포용적인 일치를 지향하는 ‘중용(Via Media)’ 정신을 형성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는 캔터베리 대주교를 ‘동등자 중의 첫째(Primus inter pares)’로 존중하는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전 세계 관구들의 연합체로 운영됩니다.
2) 한국 선교의 시작과 고요한(Charles John Corfe) 주교
대한성공회의 선교 역사는 1889년 11월 1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한국 초대 주교로 서품받은 고요한(Charles John Corfe, 1843~1921) 주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요한 주교는 해군 군종사목 경험을 지닌 인물로, 1890년 9월 29일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선교의 닻을 올렸습니다.
고요한 주교와 초기 성공회 선교사들은 섣부른 언어적 전도나 무리한 개종을 지양했습니다. 조선의 문화와 정서를 존중하며 헌신적인 섬김을 먼저 실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의료 선교의 개척: 1891년 인천에 ‘낙선시의원(樂善施醫院)’을 개원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습니다. 이후 정동의 베드로 병원, 평양과 여주, 진천 등으로 병원 사역을 확장했습니다.
- 토착화와 문화 존중: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을 수용한 강화읍성당(1900년 완공), 온수리성당, 청주 수동성당 등은 서양 기독교 신앙이 한국 전통 양식과 깊이 조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입니다.
- 사회 선교의 씨앗: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신자들을 보호하고,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의 상흔 속에서 보육원과 복지 시설을 운영하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했습니다.
2. 신학적 판단 기준: 세 겹의 줄(성서, 이성, 전통)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질문과 윤리적 판단 앞에서 대한성공회는 어떤 기준을 제시할까요? 16세기 성공회 신학자 리처드 후커(Richard Hooker)는 교회의 판단 기준으로 세 가지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삼발이(Three-legged stool)에 비유되며,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한 신앙이 유지된다고 봅니다.
- 성서(Holy Scripture): 신앙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제1의 규범입니다. 그러나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기계화하여 해석하지 않고, 기록된 시대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복음의 본질을 분별합니다.
- 이성(Reason):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지성과 분별력입니다. 신앙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며, 성서를 읽고 적용할 때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탐구, 시대에 부합하는 통찰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 전통(Tradition): 교회가 지난 2천 년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축적해 온 신앙고백, 전례, 교부들의 가르침입니다. 개인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성서 해석으로 발생할 수 있는 독선과 오류를 전통의 지혜로 방지합니다.
이 판단 기준은 오늘날 대한성공회가 사회적 약자 보호, 생명평화 운동, 환경 생태 보존과 같은 현대 사회 문제에 열린 태도로 응답하는 중요한 신학적 기초가 됩니다.
3. 성공회와 다른 교파의 비교 및 구별 조건
성공회는 외형적으로 가톨릭과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제도와 교리적 세부사항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으며, 장로교·감리교 등 다른 개신교 교파와도 차별화되는 특징을 지닙니다.
성공회·로마가톨릭·개신교(장로교/감리교) 비교
| 비교 항목 | 대한성공회 | 로마 가톨릭교회 | 개신교 (장로교·감리교 등) | | — | — | — | — | | 교단 최고 수장 | 세계적 단일 수장 없음 (관구별 독립 자치) | 교황 (절대적 수위권 및 교황무류성) | 세계적 단일 수장 없음 (교단 총회 중심) | | 성직자 결혼 | 주교, 사제, 부제 모두 결혼 가능 | 사제 및 주교 독신 원칙 (동방예식 등 일부 예외 제외) | 목사, 전도사 모두 결혼 가능 | | 여성 성직 서품 | 여성 부제·사제·주교 서품 허용 | 여성 서품 불가 (남성만 가능) | 교단별 상이 (장로교 합동 등 불가, 통합·감리교 허용) | | 성사(성례전) 체계 | 2개 주요성사(세례·성찬) + 5개 성사예식 | 7성사 체계 유지 | 2개 성례(세례·성찬)만 인정 | | 성모 마리아 공경 | 신앙의 모범으로 존중 (무원죄잉태설, 성모승천설 등은 교의로 강제하지 않음) | 교의로 선포된 성모 승천 및 무원죄 잉태 공경, 전구 기도 | 성경적 신앙의 모범으로 존중하나 전구 기도는 드리지 않음 | | 예배 형식 | 공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 기반 전례 | 미사 경본에 따른 정형화된 전례 | 설교 중심의 비교적 자유로운 순서 |
4. 대한성공회 성당 첫 방문 및 예배 참여 가이드
성공회 예배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일반 개신교 교회나 성당과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막연할 수 있습니다. 대한성공회의 주일예배는 ‘감사성찬례(Eucharist)’라고 부르며, 설교와 더불어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이 항상 중심을 이룹니다.
성공회 성찬례 참여 실행 순서
- 성당 도착 및 주보·기도서 수령안내 데스크에서 당일 주보와 함께 전례가 수록된 ‘성공회 기도서’ 및 성가집을 받습니다.
- 성당 입당 및 묵상예배당에 들어서면 제단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무릎을 꿇거나 앉아 예배를 준비하는 묵상 기도를 드립니다.
- 말씀의 전례 참여예배는 크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구성됩니다. 집례 사제의 인도에 따라 구약성서, 시편, 서간(신약 편지), 복음서 총 4번의 성서 봉독을 경청합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존중하는 의미로 모든 신자가 기립합니다.
- 설교와 신앙고백, 신자들의 기도복음 선포에 이은 강론(설교)을 들은 뒤, 회중 전체가 니케아 신경 또는 사도신경으로 공동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어 교회와 세상,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립니다.
- 평화의 인사성찬으로 나아가기 전 신자들 서로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며 악수나 목례를 나눕니다. 이웃과 화해한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 성찬의 전례 및 영성체사제의 감사기도와 성령 임재 기원을 거쳐 축별된 빵과 포도주가 분배됩니다. 안내에 따라 제단 앞으로 나아가 성체를 영합니다.
- 파견과 나눔성찬 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주님의 강복(축복)을 받은 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 파견됩니다.
5. 예배 참석 전 확인해야 할 필수 체크리스트
성공회 전례에 처음 참여할 때 당황하지 않도록 사전에 확인해야 할 기본 사항과 주의해야 할 예외 규칙입니다.
첫 방문자 필수 점검표
- [ ] 성찬(영성체) 참여 자격 확인: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식 세례(또는 영세)를 받은 기독교인이라면 교파(가톨릭, 장로교, 감리교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성찬을 모실 수 있습니다.
- [ ] 세례를 받지 않은 경우의 행동: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방문자나 영성체를 원치 않는 신자는 제단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거나, 제단 앞으로 나가 양손을 가슴에 ‘X’자로 얹어 사제의 머리 얹음 축복(안수)만 받을 수 있습니다.
- [ ] 복장과 예절: 단정하고 차분한 일상복을 착용하면 충분합니다. 가톨릭 여성 신자들이 쓰는 미사보(베일) 착용은 개인의 선택 사항이며 의무가 아닙니다.
- [ ] 전례 동작(기립·좌석·착석): 성공회 전례는 기도할 때 무릎 꿇거나 고개 숙이고, 찬양하거나 복음서를 들을 때 서며, 말씀을 배울 때 앉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주보의 안내나 주변 교우들의 움직임을 편안하게 따르면 됩니다.
- [ ] 헌금(봉헌) 시간: 강제성이 전혀 없으며, 신앙적 감사의 표현이므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6. 주의해야 할 예외와 혼동하기 쉬운 오해
성공회에 대해 인터넷이나 구전을 통해 잘못 알려진 정보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사적이고 제도적인 정확한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영국 헨리 8세의 이혼 때문에 생긴 가짜 교회인가?”역사적 왜곡 중 하나입니다. 헨리 8세의 혼인 무효 소송이 교황청과의 분리를 촉발한 정치적 도화선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잉글랜드 교회의 종교개혁은 오랜 기간 축적된 지성인들의 복음주의 개혁 운동, 에드워드 6세 때의 성서적 기도서 제정, 엘리자베스 1세의 중용 정착 등을 거치며 신학적·제도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한 국왕의 사적인 욕망만으로 하나의 세계적 교파가 탄생하고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 “신부(사제)가 있으니 가톨릭의 한 분파인가?”성공회 성직자는 ‘사제(Priest)’ 또는 친근하게 ‘신부’라고 부르지만, 로마 교황청의 관할 아래 있지 않으며 개신교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의 핵심 구성원입니다. 또한 성공회 사제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 “진보적인 사회운동만 하는 교회인가?”나눔의 집, 장애인 복지, 환경운동 등 사회선교 분야에서 두드러진 목소리를 내어 사회참여적 교단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모든 활동의 본질은 깊은 침묵 기도, 수도원 전통, 정결한 성찬례 전례라는 보수적이고 깊은 영성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7.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다른 개신교회(장로교, 감리교)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성공회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받아도 되나요?
네, 가능합니다. 대한성공회는 정통 기독교 교단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은 물세례를 완전한 성세성사로 인정합니다. 따라서 별도의 재세례를 요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누구나 주님의 식탁에 기쁨으로 초대됩니다.
Q2. 대한성공회 신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비신자라면 성당에서 일정 기간 교리 교육(신자 예비 교육)을 이수한 뒤 세례성사를 받습니다. 이미 다른 기독교 교파에서 유효한 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재세례를 받지 않고, 소정의 교육을 거쳐 주교의 안수를 통해 교구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식 승인받는 ‘견진성사(Confirmation)’ 또는 ‘입교식’을 통해 정식 신자가 됩니다.
Q3. 성공회 신부님(사제)은 왜 가톨릭 신부님처럼 로만 칼라 셔츠를 입나요?
목에 두르는 흰색 띠인 ‘로만 칼라(Roman Collar)’는 가톨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19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회자들에 의해 성직자의 청빈과 봉사, 정결을 상징하기 위해 고안되어 서방 기독교 전반에 퍼진 성직자 복식입니다. 성공회 성직자 역시 거룩한 직무의 상징으로 로만 칼라를 착용합니다.
Q4. 주일예배 시간은 얼마나 걸리며, 아이와 함께 가도 괜찮은가요?
통상 성찬례는 찬양, 4편의 성경 봉독, 설교, 성찬 분배 등을 포함하여 약 1시간에서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유서 깊은 성당들은 유아실이나 어린이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가족 단위 방문도 환영받습니다. 처음 방문할 성당의 주일예배 시간을 교구 홈페이지나 성당 안내를 통해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을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