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인사를 나눌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샬롬(Shalom)’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단어를 단순히 ‘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 혹은 ‘마음의 안정’ 정도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이 가리키는 샬롬과 평화의 개념은 일상적인 심리적 평온이나 소극적인 무분쟁 상태를 훌쩍 뛰어넘는 깊고 풍성한 신학적 배경을 품고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어 세계관에서 출발한 구약의 샬롬이 어떻게 신약성경의 헬라어 에이레네(Eirene)로 이어지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일상 신앙으로 확장되는지 그 구체적인 성경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원어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이를 삶에서 분별하고 실천하는 명확한 기준을 살펴봅니다.
1. 구약성경의 샬롬(Shalom): 어원과 다차원적 의미
구약성경에서 샬롬은 약 250회 이상 등장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어근 ‘샬람(Shalam)’에서 유래했습니다. 샬람의 기본 의미는 ‘온전하다’, ‘완전하다’, ‘회복되다’, ‘배상하다’, ‘채워지다’입니다. 즉, 어떤 결핍이나 손상이 온전하게 메워져 본래의 바른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샬롬의 세 가지 기초 영역
구약에서 사용된 샬롬은 단순히 내면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고 실재적인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합니다.
- 관계적 온전함(하나님과의 언약): 샬롬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구약의 언약(Covenant) 사상에서 평화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신뢰 속에서만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는 물질적 풍요나 군사적 안정이 있어도 진정한 샬롬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 사회적 공의와 윤리(이웃과의 관계): 샬롬은 미쉬파트(Mishpat, 정의) 및 체다카(Tsedaqah, 공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습니다. 구약 예언서들은 사회적 약자(고아, 과부, 나그네)가 압제받는 불의한 사회 구조 속에서 외쳐지는 평화 구호를 거짓 평화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예: 예레미야 6:14).
- 물질적·신체적 온전함(총체적 번영): 신체적 건강, 토지의 소산, 이웃과의 원만한 거래, 결손이 발생했을 때의 정당한 배상 등 인간 삶의 구체적인 안녕(Well-being) 전체가 샬롬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구약의 샬롬은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온전한 자리에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2. 신약성경의 에이레네(Eirene)와 그리스도 중심적 확장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면서 헬라 문화권의 평화 개념인 ‘에이레네(Eirene)’를 사용합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에이레네는 주로 국가 간의 전쟁이 멈춘 정전 상태, 혹은 로마의 군사적 힘으로 유지되던 질서(Pax Romana)를 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저자들은 70인역(LXX)의 번역 전통을 이어받아, 에이레네라는 단어에 구약 히브리어 샬롬의 포괄적 의미를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화목과 새로운 평화
신약성경에 이르러 평화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 바울 서신(로마서 5:1, 골로새서 1:20)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인이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평화는 인간의 수양이나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수직적 관계의 화해에서 출발합니다.
-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장벽 철폐: 에베소서 2장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율법의 담을 그리스도께서 허무시고, 둘을 한 몸으로 만드사 평화를 이루셨다고 기록합니다. 사회적·민족적 편견과 갈등이 복음 안에서 치유되는 공동체적 평화입니다.
- 세상이 줄 수 없는 내적 평안: 요한복음 14:27에서 예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외적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오는 평안을 의미합니다.
3. 참된 샬롬과 거짓 평화를 분별하는 판단 기준
성경은 겉보기의 고요함과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샬롬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일상 신앙생활과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는 종종 갈등을 회피하는 것을 평화로 오해하곤 합니다. 올바른 영적 분별을 위해 다음의 기준을 점검해야 합니다.
평화 분별을 위한 핵심 판단 기준
- 진리와 공의의 수반 여부: 참된 샬롬은 불의를 덮어두거나 죄를 묵인하는 대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3:17은 위로부터 난 지혜를 설명할 때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라고 순서를 분명히 합니다. 진리가 결여된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타협입니다.
- 관계의 근본적 회복 지향 여부: 겉으로 드러나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대화를 단절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샬롬이 아닙니다. 상처를 직면하고 상호 용서와 화해를 통해 관계를 복원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주재권(Lordship) 인정 여부: 인간 중심의 자기만족이나 영적 게으름에서 오는 평온함은 일시적 안도감일 뿐입니다.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가운데 임하는 안정감이 성경적 평화입니다.
4. 일상에서 성경적 샬롬을 실천하는 단계적 과정

성경은 평화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누리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Peacemaker, 마태복음 5:9)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일상에서 성경적 평화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샬롬을 만들어가는 4단계 실천 과정
- 자기 성찰과 수직적 관계 회복 (1단계): 타인과의 관계에서 평화가 깨졌을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와 허물을 정직하게 돌아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선행되어야 타인을 용납할 영적 여유가 생깁니다.
- 사실 확인과 경청 (2단계): 오해와 억측은 분쟁의 주된 원인입니다. 잠언의 가르침처럼 사정을 듣기 전에 속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과 고통을 사실에 근거하여 차분히 경청합니다.
- 온유한 소통과 진실한 사과·용서 (3단계): 문제를 직면하되 상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성경적 권면의 태도로 온유하게 대화합니다.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 또는 사과를 실행합니다.
- 공동체적 온전함 추구 (4단계): 갈등 해결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이 겪는 결핍을 실질적으로 돕거나 제도적·환경적 보완책을 마련함으로써 상호 신뢰와 온전함을 지속적으로 세워갑니다.
5. 주의해야 할 예외와 성경적 오해
성경의 평화 개념을 적용할 때 주의해야 할 중요한 신학적·실천적 예외들이 있습니다.
- 예수님의 ‘검(칼)’ 언급에 대한 오해: 마태복음 10:34에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선포될 때 죄와 세속적 가치관에 대한 결단이 요구되며, 그 과정에서 가족이나 세상과의 불가피한 갈등과 분리가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무조건적인 현상 유지나 인간적 야합을 뜻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 불의에 대한 침묵을 평화로 착각하는 위험: 구약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가난한 자를 착취하면서도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외치던 지도자들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성경적 샬롬은 불의에 맞서 정의를 요구할 때 발생하는 일시적인 소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물질적 번영과 샬롬의 일치 오류: 구약에서 샬롬이 번영의 측면을 포함한다고 해서, 부유함이나 무병장수가 곧 높은 영적 수준이나 절대적인 평화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의 사례처럼 의인이 고난을 겪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라는 근본적 샬롬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평화 개념 핵심 점검표
아래 체크리스트를 통해 신앙생활 속에서 바라보는 평화의 개념을 정돈해 볼 수 있습니다.
- [ ] 평화를 단순한 ‘갈등 회피’나 ‘침묵’이 아니라 ‘온전한 관계의 회복’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 [ ] 내면의 평안이 외부 상황의 안락함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는가?
- [ ] 이웃과의 갈등 상황에서 진리와 온유함을 함께 지키며 적극적인 화해를 도모하고 있는가?
- [ ]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의의 실천이 샬롬의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있는가?
- [ ] 불의나 거짓과 타협하여 얻어낸 거짓 평안을 경계하고 있는가?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구약의 샬롬과 신약의 에이레네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의미인가요?
완전히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신약의 에이레네는 헬라어 어휘를 빌려왔지만, 그 내용과 신학적 바탕은 구약의 샬롬 개념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이 보다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성취되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Q2. 샬롬을 인사말로 쓸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나요?
유대인들이 “샬롬 알레이켐(Shalom Aleichem,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인사할 때처럼, 이는 단순한 안부 인사를 넘어 상대방의 영혼과 육체, 가정과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질서와 보호,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라는 신앙적 축복의 선언입니다. 따라서 진실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의 온전함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Q3. 기독교인은 어떠한 갈등 상황에서도 무조건 양보하고 참아야만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명하지만, 동시에 악에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합니다(로마서 12:21). 거짓이나 불의에 무조건 침묵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이 아닙니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 안에서 말하고(에베소서 4:15),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희생이 필요한 순간과 공의를 바르게 세워야 하는 순간을 기도로 분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