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중세 수도원 개혁 운동의 중심에 섰던 시토회 수도사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aux, 1090~1153)는 교회사에서 ‘마지막 교부’라 불릴 만큼 깊은 영성적 유산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가 집필한 수많은 저작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라틴어: De diligendo Deo)는 기독교 역사 전반에 걸쳐 신자의 영적 성숙과 내면적 변화를 다룬 고전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로마 교회의 추기경 아이메릭(Aimeric)의 서신 질문, 곧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신학적이면서도 실천적인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 저술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앙인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막연한 감정이나 의무적인 종교적 계명으로만 받아들여 혼란을 겪곤 합니다. 베르나르의 고전은 인간이 지닌 본성적 연약함과 자기중심성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하나님을 그분 자체로 사랑하는 순수한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단계적으로 조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교회사적 배경과 문헌의 중심 사상, 베르나르가 제시한 사랑의 4단계와 영적 분별 기준, 그리고 이를 오늘날의 일상에서 점검하고 실천하는 구체적인 순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1. 저작 배경과 핵심 질문: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베르나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의 서두에서 기독교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 두 가지를 던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Causa diligendi Deum)이며,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 또는 척도(Modus diligendi Deum)입니다. 이에 대해 베르나르는 라틴어로 다음과 같은 명쾌한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그분 자신이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방식은 척도 없이(한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Causa diligendi Deum, Deus est; modus, sine modo diligere.)
1) 창조와 구속의 은혜에 대한 인식
베르나르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첫 번째 근거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성경적 사실(요일 4:19)을 확고히 세웁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일반 은혜(창조)와 특별 은혜(구속)라는 두 가지 축으로 설명합니다.
- 창조의 은혜: 인간은 육체적 생명, 이성, 자유의지, 일상의 기본적 공급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베르나르는 이것이 모든 인류, 심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부인하는 이들에게조차 값없이 주어진 보편적 선물이라고 봅니다.
- 구속의 은혜: 창조보다 더 큰 사랑은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내어주신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베르나르는 하나님이 세상을 말씀 하나로 창조하셨으나, 인간을 다시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멸시와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새로운 공로를 쌓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부어진 헤아릴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마땅하고 유일한 응답입니다.
2) 사랑의 척도: 한계 없는 사랑
인간의 사랑은 대개 대상의 유용성이나 조건에 따라 계산되고 제한됩니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 그 자체(요일 4:8)이므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응 역시 제한된 저울질로 규정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타협이 아니라, 인간의 전 존재(마음, 뜻, 힘)를 다해 헌신하는 지향점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베르나르가 제시한 ‘사랑의 4단계’ 구조 분석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의 백미는 인간의 사랑이 성화되어 가는 영적 여정을 4개의 뚜렷한 단계로 도식화하여 설명한 부분입니다. 베르나르는 인간 본성에 내재된 육적인 자기애를 무조건 억압하거나 부인하는 대신, 은혜를 통해 점진적으로 정화되고 승화되어야 할 현실적인 출발점으로 인정합니다.
1) 제1단계: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 (자연적 자기애)
모든 인간은 생존 본능과 육체적 필요를 지닌 존재로 태어납니다. 타락한 본성 아래 있는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돌보며, 모든 관심사가 자신의 보존과 안락에 머뭅니다. 성경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 마 22:39)고 명하신 것은, 이미 인간이 자신을 철저히 사랑하고 있음을 전제한다는 것이 베르나르의 통찰입니다. 이 단계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본성이지만, 여기에만 머물 경우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을 배제한 탐욕과 자기중심성에 갇히게 됩니다.
2) 제2단계: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필요에 따른 의존)
인간은 삶의 시련, 결핍, 질병, 죽음의 공포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마주합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고난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외부의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 이 단계에서 신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고난에서 건져주시기를 간구합니다.
- 그러나 이 사랑의 동기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안녕과 필요를 채워주시는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 비록 불완전한 상태이지만, 베르나르는 이 단계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결핍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것은 더 깊은 신뢰로 나아가기 위한 정당한 교육적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3) 제3단계: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인격적 신뢰와 연합)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신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너머의 ‘선물을 주시는 분’을 바라보게 됩니다. 시편 34편 8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면서, 이제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성품과 공의, 자비하심 자체가 아름다워서 사랑하게 됩니다.
- 사랑의 동기가 ‘나의 유익’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중심 이동을 이룹니다.
- 고난이나 손해가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신앙의 상태입니다.
- 베르나르는 대부분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이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을 경주한다고 설명합니다.
4) 제4단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 (완전한 자기 망각)
베르나르가 제시하는 가장 높은 차원의 영적 정점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에고(자아)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뜻 안에서만 자신을 가치 있게 바라보게 됩니다.
-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통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봅니다.
- 베르나르는 이 단계를 이 땅의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깊은 기도와 은혜의 순간에 짧게 경험할 수 있는 황홀경(contemplatio)에 가까우며, 궁극적으로는 부활 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온전히 누리게 될 종말론적 상태로 보았습니다.
3. 영적 성숙을 점검하는 신앙적 판단 기준과 주의할 예외
베르나르의 텍스트를 현대의 신앙생활에 적용할 때, 영적 상태를 성급하게 단정하거나 신비주의적 오해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분별 기준이 필요합니다.
나의 영적 상태를 분별하는 기준 체크리스트
현재 나의 신앙 동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래 기준을 객관적으로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 기도의 내용과 중심성: 기도 시간의 대부분이 일상적인 필요와 위기 탈출의 간구에만 머물러 있는가(제2단계), 아니면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고 그분의 임재 자체를 구하는 기도가 자연스러운가(제3단계).
- 고난에 대한 반응: 기도 응답이 지연되거나 기대치 않은 상실과 역경을 만났을 때, 원망과 의심으로 믿음이 무너지는가, 아니면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머무를 수 있는가.
- 이웃 사랑의 동기: 타인을 돕는 행위가 인정 욕구, 보상 심리, 의무감에서 비롯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흘러넘쳐 자발적으로 섬기게 되는가.
- 말씀을 대하는 태도: 성경을 현실적 지혜나 성공의 처세술로 읽는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뜻의 발견을 위해 읽는가.
주의할 예외와 신학적 오해
베르나르의 사상을 이해할 때 다음의 극단적인 해석을 피해야 합니다.
- 자연적 자기애(제1단계)를 무조건적인 죄로 동일시하는 오류: 인간이 육체를 돌보고, 쉼을 취하며, 가족과 생존을 지키는 본성은 창조 질서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절대화되어 하나님과 이웃을 착취하는 자기중심성(탐욕)으로 변질되는 것이지, 본성적 존재 자체를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 범신론적 합일과의 혼동(제4단계의 오해): 베르나르가 말하는 신적 연합은 인간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어 신성을 획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의지가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와 온전히 일치하고 순종하는 ‘의지의 연합(unitio voluntatis)’을 의미합니다.
- 영적 엘리트주의 경계: 자신을 제3단계나 제4단계에 도달한 완전한 자로 여기며, 초보적인 간구를 드리는 다른 성도를 낮추어 보는 것은 영적 교만입니다. 베르나르 자신도 일상에서는 여전히 연약한 육체를 지닌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4. 사랑의 심화를 위한 4단계 실행 순서
사랑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순종과 훈련의 과정입니다. 베르나르의 사상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묵상과 사랑을 심화해 나가는 구체적인 실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영적 자만을 내려놓고,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고난과 결핍을 불행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을 찾게 하시는 초대장으로 수용합니다.
- 결핍과 약함의 정직한 시인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일상의 은혜(가족, 건강, 생명)와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 은혜를 구체적으로 묵상합니다. 매일 감사의 제목을 기록하며 모든 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주권적인 선물임을 기억합니다.
- 받은 은혜에 대한 구체적 감사 기록
기도 시간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조정하여, 간구 목록을 쏟아놓기 전에 최소 5~10분간 하나님의 공의, 사랑, 신실하심 등 그분의 성품 자체를 묵상하고 찬양하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도 ‘나에게 주어질 복’ 이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먼저 탐구합니다.
- 자기중심적 기도를 넘어선 예배의 훈련
내면의 묵상은 반드시 이웃 사랑의 행위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나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대상에게 시간과 물질을 내어주는 훈련을 통해, 자기중심성을 허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로로서 흘려보냅니다.
- 사랑의 외적 실천과 자아 내려놓기
5.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베르나르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는 개신교 신앙과도 부합하나요?
그렇습니다. 베르나르는 중세 가톨릭 수도원 전통의 인물이지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베르나르를 가장 존경하고 자주 인용한 교부 중 한 명으로 꼽았습니다. 루터는 베르나르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십자가를 깊이 사랑했음을 칭찬했고, 칼뱅 역시 《기독교 강요》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은혜의 관계를 논할 때 베르나르의 글을 긍정적으로 인용했습니다. 구속의 은혜에 대한 깊은 신뢰와 그리스도 중심성은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가 공유하는 유산입니다.
Q2. 4단계인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은 이기주의와 어떻게 다른가요?
근본적인 동기와 주권의 위치가 다릅니다. 1단계의 이기주의는 ‘나의 만족과 영광’을 위해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반면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로 값주고 사신 소중한 피조물’로서의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온전히 내어드리기 위한 사랑이므로, 자기중심성이 완전히 제거된 거룩한 자기 긍정입니다.
Q3. 일상생활을 하면서 4단계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베르나르 스스로도 이 땅의 제한된 삶 속에서 4단계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생존을 위해 먹고 자며 세상의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육체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다만 깊은 기도, 말씀 묵상, 혹은 전적인 순종의 순간에 맛보는 영적인 은혜를 통해 장차 도래할 천국의 완전한 사랑을 잠시 엿보는 것이며, 이러한 순간의 경험이 일상을 견디고 살아가는 거룩한 동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