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교회사를 돌아볼 때 가장 큰 윤리적 고뇌와 신앙적 결단을 보여준 인물 중 하나는 바로 독일의 루터교 목회자이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입니다. 그는 국가 권력이 광기에 휩싸여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교회를 어용 조직으로 전락시키려 할 때, 침묵하지 않고 말씀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정면으로 질문했습니다.
본회퍼의 사상과 실천은 오늘날까지도 “신앙인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의 신학적 기초가 무엇이었는지, 나치즘에 타협했던 주류 교회에 맞서 태동한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군사 첩보국(Abwehr)을 통한 지하 저항 활동에 투신하게 된 배경과 판단 기준을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1.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적 기초와 ‘제자도’의 본질
본회퍼 신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 속의 이웃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학을 상아탑에 갇힌 추상적 이론으로 보지 않고, 십자가를 따르는 구체적인 실천의 학문으로 파악했습니다.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의 구별
본회퍼가 1937년 저술한 『나를 따르라(Nachfolge, 제자도)』에서 던진 핵심 비판은 바로 ‘값싼 은혜(billige Gnade)’였습니다. 당시 독일 개신교회는 마르틴 루터의 ‘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칭의론을 오해하여, 삶의 회개와 실천적 제자도 없이 죄를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는 관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 값싼 은혜의 속성: 죄인에 대한 칭의가 아니라 죄 자체를 정당화하는 태도입니다. 제자의 결단이나 회개, 십자가의 헌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 없이 주어지는 위로와 성례의 남용을 뜻합니다.
- 값비싼 은혜의 속성: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생명을 요구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값을 치른 보물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인간에게 멍에를 씌우되 참된 자유와 생명을 선물합니다.
본회퍼는 참된 제자도란 세상과 동떨어진 은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삶의 한복판에서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십자가의 짐을 나누어 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성숙한 세상을 위한 성인된 신학’과 ‘타자를 위한 교회’
수감 생활 중 가족과 친구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옥중서간(Widerstand und Ergebung)』에서 본회퍼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신학적 물음을 던졌습니다. 인류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과 이성의 시대, 즉 ‘종교성이 약화된 세성(성숙한 세상)’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증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인간의 지식이 닿지 않는 한계 영역이나 결핍을 메우는 ‘틈새의 신(God of the gaps)’으로 가두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무력하게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제시한 참된 교회의 모습은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오직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Kirche für andere)”였습니다.
2. 국가교회의 굴절과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의 결성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독일 국가사회주의(나치) 정권은 기독교를 정권의 지배 도구로 흡수하려는 치밀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교회 내 분열과 이에 저항한 고백교회의 출현은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독일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의 등장과 신앙의 변질
정권의 비호 아래 형성된 ‘독일 기독교인’ 분파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기독교 신앙과 혼합하는 혼합주의적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 아리안 조항(Arierparagraph)의 교회 적용: 유대계 혈통을 가진 목회자와 신자를 직분에서 배제하고 교회 밖으로 추방하려 했습니다.
- 구약성경의 배격: 히브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이 담긴 구약성경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리안 민족의 영웅으로 둔갑시키려 했습니다.
- 제국교회(Reichskirche) 구축: 지역별 개신교회를 하나로 통합하여 나치 친화적인 제국 주교 루트비히 뮐러를 수장으로 세우고 정권에 종속시켰습니다.
바르멘 선언과 고백교회의 태동
이러한 신앙 왜곡에 맞서 마르틴 니묄러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1933년 9월 ‘목회자 긴급동맹(Pfarrernotbund)’이 결성되었고, 이는 1934년 ‘고백교회’의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1934년 5월, 바르멘에서 열린 고백교회 총회에서는 카를 바르트가 기초한 유명한 바르멘 신학 선언(Barmer Theologische Erklärung)이 발표되었습니다.
바르멘 선언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주님이시며, 국가나 총통, 민족과 같은 세속적 권력은 교회의 복음 선포와 신앙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주권 선언이었습니다. 본회퍼는 고백교회의 젊은 지도자로서 징크스트와 핑켄발데에 세워진 비합법 지하 신학교의 학장을 맡아 미래의 목회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이곳에서 이뤄진 공동체 생활과 묵상 훈련의 경험은 훗날 그의 명저 『신도의 공동생활(Gemeinsame Leben)』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3. 침묵을 넘어선 저항 활동: ‘미치광이 운전사’의 비유와 결단
본회퍼의 삶에서 가장 많은 토론과 성찰을 낳는 대목은 순수한 설교자였던 그가 어떻게 히틀러 암살 모의라는 정치·군사적 지하 저항 조직에 가담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행동하는 신앙의 판단 기준
1933년 4월, 본회퍼는 「교회와 유대인 문제(Die Kirche vor der Judenfrage)」라는 글을 통해 국가의 불의에 맞서는 교회의 3단계 행동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 1단계 (질문하기): 국가의 조치가 합법적이고 정의로운지 국가를 향해 묻고 책임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 2단계 (피해자 돌보기):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피해자들을 치료하고 위로하는 일입니다. 비록 그 피해자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유대인 등) 동일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 3단계 (바퀴를 멈추기): 피해자에게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수많은 사람을 짓밟고 달리는 마차의 바퀴살 자체를 붙잡아 멈추게 해야 합니다.
본회퍼는 훗날 이 원리를 설명하며 자주 인용되는 비유를 남겼습니다. 만약 한 미치광이 운전사가 대로에서 차를 몰며 보행자들을 치고 다닌다면, 목회자의 직무는 그 차에 치여 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러주고 부상자를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차에 직접 뛰어올라 운전대를 빼앗고 차를 멈추어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적 책임 윤리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지하 저항과 체포, 그리고 순교의 여정
1939년, 전쟁이 임박했을 때 본회퍼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미국 유니언 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 도착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귀국을 결심합니다. 그는 동료 라인홀트 니부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독일 기독교인들과 함께 이 시대의 시련을 겪지 않는다면, 나는 전후 독일에서 기독교적 삶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매형 한스 폰 도흐나니가 일하던 독일 국방군 대외첩보국(Abwehr)에 소속되어 이중 스파이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군 정보 요원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나치의 만행을 연합국 측 교회 지도자들에게 알리고, 유대인 14명을 스위스로 탈출시키는 ‘작전 7(Unternehmen 7)’에 가담했습니다.
결국 그는 1943년 4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테겔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944년 7월 20일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주도의 히틀러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비밀문서가 발각되면서 저항 조직 전체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본회퍼는 플로센뷔르크 수용소로 이감되었고, 나치 패망을 불과 한 달 앞둔 1945년 4월 9일 새벽,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4. 본회퍼의 생애와 저항을 이해할 때 주의할 점과 판단 기준
본회퍼의 행동과 신학을 현대에 바르게 계승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을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할 점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저항과 신앙 양심을 분별하는 기준
본회퍼의 저항 활동을 현대 사회에 무분별하게 대입하여 자의적인 정치 투쟁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의 결단은 철저하게 다음과 같은 내적 기준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 상황의 극단성 인식: 나치 정권은 단순한 정책적 이견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자체가 악을 조직적으로 생산하고 무고한 이들을 학살하는 극단적 상태(Status Confessionis, 신앙고백적 결단 상황)였습니다.
- 죄책의 자발적 인수(Schulübernahme): 본회퍼는 폭력과 암살 모의 가담을 ‘의로운 영웅적 행위’로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자신이 죄를 짓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더 큰 이웃의 참극을 막기 위해 하나님의 긍휼에 의탁하며 기꺼이 그 죄책을 짊어지는 결단이었습니다.
- 보편적 이웃 사랑에 기반한 실천: 특정 계급이나 교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박해받던 유대인과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려는 성경적 이웃 사랑이 동기였습니다.
흔히 오해하기 쉬운 예외적 해석들
- 모든 폭력적 저항의 정당화로 해석하는 오류: 본회퍼는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적 입장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려 했던 인물입니다. 극단적 불의 앞에서 내린 고뇌에 찬 결단을 일반적인 정치적 폭력의 면죄부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 신앙의 세속화 또는 무신론적 전향으로 보는 오류: 『옥중서간』의 ‘비종교적 해석’이나 ‘성인된 세상’이라는 표현을 전통적 기독교 신앙의 폐기로 읽는 시각이 있으나, 이는 하나님을 삶의 주변부가 아닌 현실의 중심에서 만나야 한다는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적 호소였습니다.
5. 핵심 실천 요약 체크리스트
오늘날 개인과 공동체가 본회퍼의 신학적 통찰을 삶에 적용하기 위한 실천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앙적 성찰을 위한 점검 체크리스트
- [ ] 나의 신앙이 삶의 변화와 결단이 생략된 채 자기 위로만을 구하는 ‘값싼 은혜’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 [ ] 나와 다른 처지에 있거나 소외된 이웃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지 않은가?
- [ ] 교회 공동체가 내부의 이익을 넘어 사회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타자를 위한 존재’로 기능하고 있는가?
- [ ] 신앙의 가치관과 세속적 성공의 논리가 충돌할 때, 타협 대신 말씀의 본질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회적 책임 감당을 위한 실천 순서
- 분별: 세상의 흐름과 제도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생명의 존엄이 침해받는 지점이 어디인지 성경적 시각으로 식별합니다.
- 연대: 침묵하지 않고 불의로 인해 고통받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위로합니다.
- 참여: 개인의 영성에만 머물지 않고 직업, 시민 사회, 공동체 속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책임을 다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본회퍼 목사는 본래 평화주의자였는데 왜 암살 계획에 참여했나요?
A. 본회퍼는 1930년대 초 뉴욕 유니언 신학교 시절과 프랑스 평화주의자 장 라세르와의 교류를 통해 산상수훈의 평화 정신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의 광기가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무고한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현실 앞에서, 단순한 원칙적 불참(비폭력)이 오히려 더 큰 학살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침묵이 될 수 있다는 윤리적 고뇌에 직면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죄책을 짊어지는 비장한 심정으로 거대한 악을 중단시키기 위한 극단적 수단에 가담했습니다.
Q2. 고백교회는 나치에 저항한 영웅적인 교회였나요?
A. 고백교회가 나치의 교회 왜곡에 맞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분투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백교회 내부의 다수는 국가 체제 자체를 전복하려 했다기보다, 교회의 자치권과 신앙고백을 보존하려는 보수적 동기에 머물렀던 한계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본회퍼처럼 유대인에 대한 국가적 박해 자체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체제에 저항했던 이들은 고백교회 내부에서도 소수파에 속했습니다.
Q3. ‘세속적 신학’이나 ‘비종교적 그리스도교’는 신앙을 버리라는 뜻인가요?
A.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본회퍼가 비판한 ‘종교’는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만 찾아와 빈 공간을 메우는 나약한 도피처로서의 종교 형식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학문과 문명을 통해 성숙해진 현대 사회일수록, 기독교가 종교적 껍데기나 관념적 교리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현실 한가운데서 타자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함을 역설한 것입니다.